ADVERTISEMENT

[꼼실이 부부의 초보 요리방] 나는 맛있는 호~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곳곳의 호텔마다 10월 마지막 날 열리는 핼러윈 파티 준비가 한창이다.

며칠 전 치장을 끝낸 핼러윈 코너를 지나가다 웃고 있는 듯한 호박과 눈이 마주쳤다. 불현듯 노랗고 따끈 달콤한 호박죽이 먹고 싶어졌다. 귀신 장식을 보고 호박죽을 생각해낸다는 게 약간 엽기적이긴 하지만.

"언니, 핼러윈 파티에 쓰는 그 호박이 호박죽 만들어 먹는 호박 맞지?"

함께 걷던 호텔 선배 언니에게 물었다.

"아니. 그 호박은 늙은 호박이야."

"뭐라고? 그럼 젊은 호박은 뭐야?"

"ㅎㅎ… 그게 아니라, 애호박을 가만히 두면 늙어서 그렇게 변하는…거언가?"

평상시 딱 부러지는 답을 건네던 언니가 이상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우리 호텔 요리사에게 물어봤더니 젊은 호박(애호박)과 늙은 호박은 아예 종자와 용도가 다른 것이라고 했다.

선배 언니에게 바로잡아 알려주면서 요리사에게 배운 내용도 덧붙여 설명했다.

"동의보감에 '늙은 호박은 성분이 고르고 맛이 달아 오장을 편하게 해준다'고 써 있대. 산후진통을 가라앉힐 정도로 여자들에게 좋고, 눈을 밝게 하는 등 영양가치도 탁월한 음식으로 소개돼 있대. '동짓날 호박을 먹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늙은 호박의 약효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래."

선배 언니는 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놀란 토끼 눈이 됐다.

그날 퇴근하면서 바로 늙은 호박을 샀다. 그런데 녀석이 무진장 무거웠다. 돌 같았다. 낑낑거리며 겨우 집으로 가져왔다.

먼저 퇴근한 꼼꼼이가 문을 열어주다 내 손에 들린 호박을 보더니,

"푸하하하. 네 얼굴을 집에다 장식 하려고?"

"오잉, 이 인간이…"

열은 받지만 일단 참았다.

차가운 내 표정에 놀란 꼼꼼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이 때다.'

"자, 이걸로 껍질 까고 씨 좀 빼."

과감하게 칼을 쥐어주며 명령을 내렸다.

"허억, 그냥 장식이나 하지…. 구시렁구시렁."

호박 손질을 해결하고, 찹쌀가루로 귀엽고 쫀득한 새알심을 만들었다. 어릴 때 찰흙 장난하던 추억이 떠오르며 잠시 꿀꿀했던 기분도 사라졌다.

신나서 한참 쫑알거리고 있는데 꼼꼼이는 끙끙거리며 호박씨 파기에 열중이다. 이렇게 완성된 우리의 호박죽. 사먹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얘기하고 조각(?)하며 만들어서인지 더욱 맛있었다.

호박죽 색깔처럼 노오란 행복감이 밀려왔다.

*** 앙실이의 호박죽 만들기

▶재료(4인분)= 늙은 호박 4백g, 찹쌀가루 4큰술, 설탕 4큰술, 소금 약간, 물 4컵+4큰술

▶새알심 만들기= 찹쌀가루(1/2컵)를 더운 물(1큰술)로 반죽해 만든다.

▶만드는 법= ① 늙은 호박은 행주로 닦아 씨를 빼고 껍질을 벗긴다. ② 껍질을 벗긴 호박을 작게 잘라 물(4컵)을 붓고 푹 끓인다. ③ 찹쌀가루에 물(4큰술)을 섞어 찹쌀물을 만든다. ④ 푹익은 호박을 체에 내려 곱게 만들어 끓인다. 믹서에 갈아 체에 내려도 좋다. ⑤ 끓어 오르면 설탕.소금.새알심을 넣고 익힌다. ⑥ 새알심이 익으면 찹쌀물로 걸쭉하게 농도를 맞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