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상업화 된 라마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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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저녁을 경험해 보세요."

이집트 카이로의 포시즌 호텔이 현지 최대 일간지 알아흐람에 낸 광고 문구다. 이슬람권의 라마단(단식월)을 맞이해 등장한 '이프타르(단식을 끝내고 일몰시각에 먹는 저녁, 원래 아침 식사라는 의미)'를 상품화한 것이다.

저녁 한 끼 먹는 데 화려함을 강조하면서 신문 광고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음식은 물론 물과 담배, 그리고 성관계까지 철저히 금하는 라마단이 최근 들어 해가 진 뒤에는 상업화된 축제기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레바논의 알마나르 방송은 흥청망청하는 라마단 과소비를 꼬집었다. 방송은 페르시아만 산유국에 사는 한 아랍인의 일과를 소개했다.

"칼리드는 오후 4시가 돼야 일어난다. 씻은 뒤 고급 승용차에 탄 그는 시내의 최고급 호텔로 향한다. 일몰 직후인 오후 6시 무렵에 시작되는 이프타르 코스를 예약해 뒀기 때문이다. 빈속을 달래는 따듯한 수프를 먹고 난 뒤 본격적인 코스 요리가 나온다. 아랍 전통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무대에선 춤과 퀴즈대회 등 다양한 여흥이 새벽까지 이어진다. 칼리드는 오전 3시쯤 마지막으로 한판 음식을 차려 먹고 집으로 돌아간다. 4시쯤 새벽 기도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든다."

언론들은 "13시간 정도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저녁에 폭식을 하는 것은 건강에 해롭고 비만을 부른다"는 경고성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대대수다. 실제로 라마단이 끝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체중이 더 늘어난다고 알하야트지는 지적했다.

이런 사람들을 노리고 페르시아만 산유국을 비롯한 중동 각지의 고급 호텔들은 대규모 라마단 판촉을 하고 있다. 거대한 베드윈 텐트를 만들고 밤새 먹을 수 있는 라마단 저녁 식사 코스를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카타르 도하의 매리엇 호텔은 천막을 세우는 데만 11만 달러(약 1억500만원)가 들었다. 다음날 새벽 일출시각 전까지 음식과 여흥을 제공하고 1인당 수백 달러를 받는다.

범아랍 일간지 알하야트에 따르면 라마단 기간 중 중동 각국의 소비지출은 최소 50% 이상 늘어난다. 친지를 초청하고 선물을 준비하는 축제의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라마단 과소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동 각국에서는 반성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신이 부여한 풍요에 감사하고, 단식하면서 모은 돈과 음식을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는 정신을 되살리자는 운동도 일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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