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길없는 길 - 내 마음의 왕국(6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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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인호 이우범 화
어머니는 내게 무릎 끓고 말하였었다.
『마마, 왕조가 멸망하였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 풀도 마마의 것이옵고, 저 나무도, 저 강도 모두 다 아직 마마의 것이옵니다. 저 하늘도, 하늘에 뜬구름도, 저 숲 속을 노니는 사람들도 모두 다 마마의 신민(신민)들입니다.』
그 말은 내 핏속으로 스며들어 원형질(원형질)의 피톨이 되었다. 그 말은 내 영혼으로 파고들어 핵(핵)을 이루었다. 지금까지 무심코 교과서에서 보고 배웠던 역사적 사실이 내게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몽상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광하여 미쳤을 것이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를 거꾸러뜨리고 새 왕조를 건국하였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기록에만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국가로서는 하나의 역사(역사)이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혈연의 기록이었다.
나는 그의 핏줄을 타고난 후예(후예)였던 것이다. 나는 그 해의 봄을 빈 시간이면 경복궁이나, 덕수궁같은 고궁에서 보냈었다. 그전에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들어가 않아 있는 고궁도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정원이었으며, 나의 집이었다.
건물의 단청 빛깔이나, 고궁의 정원이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닫혀 있는 문틈으로 나는 옛 왕족들이 쓰던 물건들을 엿보면서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털어놓았다 하더라도 믿어주지도 않고 나를 미쳤다고 비웃어버릴 꿈을 꾸곤 하였었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 궁은 나의 정원이다. 내 집인 궁을 내가 입장권을 하고 들어가고 있다. 저 돌계단에서 싸들고 온 음식들을 먹으면서 웃고 떠들며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있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나의 신민들이다.
내가 가장 슬펐던 것은 내가 그리는 꿈이 한갓 꿈이었으면 그나마 행복하였을 것을 실제의 현실로 절실하게 다가올 때였다. 내가 지랄하고 싶을 정도로 슬펐던 것은 기차를 타고 저 먼 교외의 왕릉을 찾아갔을 때였다. 그것은 왕조의 말기 황제들이 묻혀 있는 가족왕릉이었다. 꽃피는 계절이 지난 신록의 계절이었으므로 왕릉은 텅 비어 있었다. 넓은 왕릉을 주위로 담장이 둘러져 있었고 능 안은 키 큰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내가 찾아간 왕릉은 제26대 황제였던 고종과 그의 비 명성황후(명성황후), 그러니까 내 아버지를 낳은 생모 귀인 장씨를 문초하여 자살하게 만든 민비(민비)가 함께 묻힌 홍릉(홍릉)과, 제27대 황제였던 순종과 그의 비 순명황후(순명황후)가 묻힌 유릉(유릉), 그 두 왕릉을 합쳐 홍유릉(홍유릉)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그곳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곳에서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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