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KBS 사장 재선임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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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KBS 정연주 사장이 사표를 냄과 동시에 후임 사장 선임 공모에 응모했다. 물론 방송법 규정에 사장이 연임할 수 있고, 대한민국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긴 하다. 그러나 연임을 하기 위해서는 연임에 걸맞은 실적과 자질이 있어야 한다. 단지 정권과 코드가 맞는다고 공영방송의 책임자 자리를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재선임되면 안 되는 이유는 공교롭게도 그가 사임하면서 임직원에게 보낸 서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방송계에 거대한 파도가 휩쓸어 온다"며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공적 가치를 넓히는 일에 전념할 때"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 방송계는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신기술 개발과 미디어 업계의 환경 변화로 스스로 변화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정 사장은 자신이 적임자라고 생각하는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도 그는 적임자가 아니다. 그가 어떻게 사장이 됐고, 그간 KBS가 어땠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탄핵방송 하나만으로도 KBS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임무를 포기했다. 그런 그가 공영방송 운운하는 것은 뻔뻔스럽다.

경영 능력이나 도덕성도 문제다. 그의 재임 중 방송위원회가 평가한 KBS의 효율성은 지상파 3사 중 꼴찌였다. 2004년 638억원의 적자를 냈고, 지난해는 8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자 임원 임금을 20% 삭감키로 했다. 그래 놓고는 올 1월 삭감액 전액을 돌려받았다. 이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다.

KBS 노조를 포함, 임직원의 82%가 그의 연임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 그가 재선임에 나선 것은 정부의 확실한 언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으로선 내년 대선을 위해 정씨처럼 코드가 맞는 인물이 절실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젠 공영방송을 권력의 품에서 주인인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방송을 잘 아는 전문가가 KBS 사장이 돼야 한다. 이 정권의 임기가 끝나 간다고 이런 식의 몰염치로 나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