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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국민연금 개혁 어디로 가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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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논쟁과 대안에 참석한 토론자들. 왼쪽부터 배준호 한신대 교수, 최원영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정책관, 강치원 강원대 교수(사회),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금보험팀장. [조용철 기자]


▶강치원(사회)=열린우리당이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먼저 여당안에 대해 얘기해 보자.

▶최원영(복지부)=그동안 여당의 입장이 분명치 않았는데 이를 명확히 했다는 점이 상당한 진전이다. 특히 기초연금 대상을 정부안(45%)보다 확대해 60%로 한 것은 야당과의 협의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배준호(한신대)=여당안은 근본적인 개혁이 아니다.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개혁을 해야 연금 정상화에 근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연금 개혁이 늦어진다.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을 해야 한다.

▶김용하(순천향대)=정부의 연금개혁안의 가장 큰 특징은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낮추고 보험료는 15.9%로 올려 연금재정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안은 소득대체율은 낮추지만 보험료율은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것처럼 돼 있다. 보험료는 어차피 올릴 수밖에 없다. 보험료를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윤석명(보건사회연구원)=재정 안정 면에서 여당안이 과거 정부안에 비해 약한 것은 사실이다. 보험료 인상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을 서두르고 정치권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이번 안이 나온 것 같다.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인을 줄이기 위한 기초노령연금 수급자의 비율을 정부는(노인인구의) 30%로 하자고 했다. 이후 여당에서 60%로 올린 안을 내놨다. 재정 안정, 사각지대 해소란 두 가지 면에서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토의 과정에서 진전될 여지가 있는 타협안이라고 본다.

▶사회=여당이 제시한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조정으로 재정 안정이 될 수 있나.

▶최원영=복지부는 여당과의 간담회 과정에서 보험료와 소득대체율 조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협의과정에서 보험료율 인상은 보류됐다. 복지부는 앞으로 당론을 모으거나 여야 합의과정에서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 2008년 연금 재정을 다시 계산할 때 보험료율 조정 문제가 또 논의될 것이다. 여야 의원 모두 보험료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김용하=재정 안정, 사각지대, 기금운용 등 국민연금의 여러 문제는 단순한 소득대체율이나 보험료율 조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급여 수준을 낮추고 보험료율을 올리는 게 국민연금에서는 재정 안정 효과를 거둘지 몰라도 노령화 사회의 노인 소득 보장 체계로서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기초연금으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 주고 나머지는 개인이 소득비례연금으로 부담하는 2층 형태로 명확히 구분해 줘야 한다. 정부와 여당안은 재정 안정성울 위해서도, 사각지대 해소 면에서도 장기적 대안이 아니다.

▶배준호=여당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복지부가 양보한 것은 잘못이다. 정부가 연금 재정이 수십 년을 더 견딜 수 있는 안을 제시해놓고 여당의 정치적 의도 때문에 타협한 것은 실망스럽다. 기초연금제가 현재 정부안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웨덴은 기초연금제를 폐지했으며, 영국도 규모를 축소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제처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

▶윤석명=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고 보험료율을 12.9%로 높이는 안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당안은 보험료율 인상을 유보하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완화해 아쉬움이 남는다. 적지 않은 선진국이 조세방식 기초연금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방식을 도입하려면 공적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캐나다는 재정 부담 때문에 상위소득자의 기초연금 수급자격을 박탈했다. 선진국의 경험을 참고해 (기초연금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사회=여당의 기초노령연금제와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를 비교하면 어떠한가.

▶김용하=연금이 특히 필요한 계층은 하위 60%다. 현재 연금제도는 보험료를 납입한 사람만 혜택을 본다. 빈곤층엔 '그림의 떡'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빈곤층을 무시한 연금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다. 하위 계층을 위해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만드는 것은 국민을 몇 갈래로 나누는 것이다. 공무원연금.국민연금.기초노령연금.공적부조 등으로 나누는 것은 국제적 추세도 아니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에 대해 단순히 '조세 부담이 많아지니 문제'라는 것은 편협한 비교다. 중요한 것은 조세 부담, 연금을 합해 어떤 제도가 비용이 많이 드느냐를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윤석명=기초연금제는 좋은 제도다. 그러나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우리나라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 이전에 조금이라도 더 부담을 한 뒤 미래 세대에 넘겨야 한다.

▶최원영=가장 속도가 빠른 고령화사회에서 기초연금제가 지속 가능한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노인부양비율(생산가능인구 대비 노인인구 비율)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납세자 비율과 노인 비율을 따져보면 더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으로 일정액을 주는 제도가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기초연금제는 갈수록 막대한 재원이 들어간다. 또 제도 전환으로 인한 혼란이 막대할 것이다.

▶배준호=기초연금제를 도입한 스웨덴은 1999년 이를 폐지했다. 이후 더 많은 연금을 주면서도 재정 절약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영국도 연금크레딧제도를 도입, 기초연금제가 있기는 하지만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

▶사회=여당안이 선거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고 보험료 인상을 미룬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원영=복지부는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점에서 양보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인상을 요구할 것이다. 단 국회에서 이런 행정부 요청을 토대로 여러 정치적 상황을 감안해 결정할 것이다. 우리가 보험료율 인상 보류를 수용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선거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 일부 언론 보도처럼 당정이 합의한 것도 아니다.

▶사회=기초노령연금 대상 노인을 선정하는 데 문제가 없는가.

▶윤석명=수급자 선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은 100% 인정한다. 현재 국민연금 제도도 소득 파악이 어렵다. 우리 인프라로는 분명히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얻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배준호=기초노령연금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차라리 현재 시행 중인 기초생활수급제를 확대하는 게 낫다. 만약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가 없다면 기초노령연금제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초연금이 인기가 있다 보니까 정부.여당이 기초연금 흉내라도 내고 싶어 내놓은 것 같다.

▶김용하=기초노령연금은 소득 파악이 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노인의 80%는 소득이 없다. 또 현재 국민연금을 납부했던 노인들은 특례노령연금을 평균 10만원밖에 못 받는데, 국민연금을 내지 않은 노인도 기초노령연금 10만원을 받게 된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게 뻔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위 60%는 기초노령연금, 상위 18%는 공적연금을 받는다고 치면 그 중간에 27%의 노인들은 아무것도 못 받는다. 노인 중 연금 받는 사람, 못 받는 사람이 갈려 싸움이 나게 생겼다.

▶최원영=기초노령연금 대상자는 소득과 재산을 근거로 선정한다. 소득만 갖고는 대상자를 고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자식이 있다고 못 받는 문제 때문에 부양 의무자 기준은 이번에 적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회=국민연금 개혁을 하려면 공무원연금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용하=공무원연금 급여 수준은 국민연금의 두 배로, 적립기금은 이미 고갈된 상태다. 공무원연금 재정이 국민연금보다 더 심각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전제돼야 국민연금 개혁이 가능하다.

▶배준호=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진 이면에는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미룬 탓이 크다. 재정 사정은 공무원연금이 훨씬 심각한데 건드리지 않고 그 주체인 공무원이 개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 불신이 커진 것이다.

▶윤석명=원론적으로 맞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이미 이해관계자가 많아 개혁이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국민연금을 수급자가 늘어나기 전에 빨리 개혁해야 한다.

▶사회=마지막으로 연금 개혁에 대해 정리를 해달라.

▶최원영=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이 마무리됐으면 한다. 많은 논의가 있었고, 국회에 대안이 제출된 상태다. 이제 갑론을박보다는 선택을 해야 할 때다.

▶김용하=연금 개혁이 빨리 이뤄져야 하지만 공적연금제도가 동시에 개혁돼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적연금 개혁을 통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올 연말까진 국민연금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온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개혁방안이 돼야 한다.

◆기초노령연금=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일정액의 연금을 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노인의 60%에게 7만~10만원을 주는 방안을 내놓았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소득대체율의 20%를 주는 한나라당의 기초연금과는 차이가 있다.

◆소득대체율=연금에 가입한 기간 중 평균 소득 대비 나중에 연금을 얼마나 받는지를 나타낸 비율이다. 예를 들어 소득대체율이 50%라고 하면 나중에 받는 연금액이 연금 가입기간 평균 소득의 절반 정도 된다는 뜻이다.

정리=정철근 기자 <jcomm@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