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개선안의 여전한 함정(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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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가 대입제도 개선안으로 영역별 적성시험제도를 제시한 게 지난해 8월이었다. 그러나 낯선 제도에 대한 여론의 강한 반발과 교육정책자문회의의 강력한 제동에 걸려 그 안은 일단 주춤하더니 10개월째 접어든 지금에 와서 방향과 골격은 그대로인 채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바뀐 게 있다면 교육정책자문회의가 제안했던 사고력 중심의 학력고사 실시방안을 일부 수렴해서 적성시험을 발전된 학력고사라는 개념으로 명확히 규정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개선안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개혁의 정신과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지닌 현실적 문제에 대한 충분한 보완과 개선이 뒤따라야 함을 촉구한 바 있다.
대학선택을 적성에 따라 결정하고 현행의 암기식 교육에서 사고력을 기르는 중등교육으로 유도하겠다는 개혁의 발상이 첫번째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따라 과외공부보다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제고하고 학군간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내신성적을 40%로 반영하겠다는 취지도 두번째의 의미를 지닌다.
세번째,이 개선안이 지닌 개혁의 정신은 대학생의 선발권을 국가가 아닌 대학에 돌려 주자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대학은 별도의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해서 30%이상의 선발권을 부여받게 된다.
적성과 사고력을 키우는 대학입시,그것을 뒷받침할 학교교육의 정상화,대학자율에 의한 학생선발권,이것이 개선안이 지닌 기본정신이었고 긍정적 측면이었다.
그러나 긍정적 측면 뒤에는 부정적 측면이 따르게 마련이다. 입시과목이 낯선 영역별이라는 것으로 구분되고 주관식문제에 의한 사고력의 측정이라면 교사ㆍ학부모ㆍ학생 모두가 당황해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어떻게 지도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델이 없고 방향이 서질 않는다.
그다음,내신성적 반영률을 올릴 경우 교정엔 치맛바람이 거세게 불수 있고 학교성적에 대한 민감한 시비가 예상될 수 있다. 또 학생선발권이 대학의 자율기능에 대폭 이양될 때,가뜩이나 부정입학으로 악명높았던 몇몇 사학의 전례에 비춰 정상적으로 운영될지도 의문이다.
우리가 우려했고 촉구했던 점은 바로 이러한 예상할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을 어떻게 하면 축소하고 제거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교당국의 면밀한 검토와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0개월 뒤에 나타난 지금의 개선안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고 그 부정적 측면을 해소할 노력의 결과도 보이지 않는다.
여론과 교육정책자문회의의 압력에 밀려 슬그머니 뒷걸음 쳤다가 약간 화장을 고치고는 다시 얼굴을 내민 꼴이 되었다.
언제 이 개선안이 확정되고,또 언제 그 모습이 바뀔지도 모른 채 교사ㆍ학부모ㆍ학생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대학입시제도만큼 민감하고 말썽많은 것도 없을 것이다. 바로 그 이유때문에라도 개선의 방향과 정신이 올바르다면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강한 추진력과 그 추진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현실적 보완장치가 더욱 면밀하고 주의깊게 검토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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