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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대륙」에도 민주화열풍/아프리카 남사하라 45개국에 확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작년 베냉공 반정폭동 도화선/독재종식 등 개혁요구 잇달아
45개국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의 남사하라 대륙에 정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일고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군사독재나 권위적인 1당전횡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민주화를 향한 「어려운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해말 노예해안으로 유명한 베냉공화국에서 반정부 폭동이 일어난 것을 신호탄으로 아이보리 코스트ㆍ카메룬ㆍ가봉 등 서부해안국가들에서 민주화시위의 불이 댕겨졌다.
북부 니제르 공화국에서는 지난 2월 교수ㆍ공무원들이 봉급인상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부는 무차별 발포로 대응한 뒤 시위발발의 책임을 물어 전각료를 해임했으나 알리 사이보우 대통령은 결국 민주화조치를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시위의 불똥은 곧 케냐로까지 대각선으로 튀었고 3월에는 가봉ㆍ아이보리 코스트,4월 들어서는 카메룬ㆍ자이르로까지 번졌다.
아프리카에서 민주화 요구시위가 금년들어 갑자기 고개를 든것은 동구변혁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국의 관영 언론들이 침묵하고 있는 「암흑상황」에서도 영국의 BBC,VOA(미국의 소리),라디오모스크바 등의 전파를 통해 동구개혁 소식을 생생하게 전해 들어 민주화의식이 크게 고양됐기 때문이다.
철통같던 40년 「철의장막」도 무너져 내리는 판에 30년 남짓한 독재기반이 요지부동일 수 없다는 것이 의식있는 아프리카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더욱이 아프라카대륙 전체의 GDP(국내총생산) 총액이 벨기에 한나라의 GDP에 해당되는 1천3백50억달러에 불과한 절망적인 경제상황도 아프리카인들을 거리로 뛰쳐 나오게 한 주요 원인이 됐다.
이같은 국민들의 거센 반발과 민주화 요구에 밀려 권력기반을 위협받고 있는 각국의 장기집권자들은 하나 둘씩 민주화조치를 약속하기 시작했다.
마티에우스 케레코우베냉공화국대통령은 지난 3월 전권을 개혁파 총리에게 넘겨준채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대륙서쪽의 작은 섬나라 상투메 프린시페국도 사상 처음 야당결성을 허용했으며,콩고의 집권노동당도 민주개혁조치를 마련할 특별위원회를 결성했다.
우익반군과의 오랜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모잠비크도 지난해 7월 마르크스주의의 포기를 선언한데 이어 금년안에 다당제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이래 줄곧 일당 독재에 시달려온 카보베르데국도 당의 독점적 위치를 포기하고 11월 다당제 자유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자이르의 모부루 세세 세코 대통령은 지난 24일 ▲1당 지배체제 폐지 ▲다당제도입 ▲헌법개정 ▲임시과도정부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획기적인 민주화조치안을 발표했으며 탄자니아의 줄리우스 니에레레대통령도 다당제 수용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검은 대륙에 이같은 바람이 불고 있는 배경에는 경제재건과 정권안정을 위해서는 서방국가들의 원조가 필수적이라는 「정치적 수요」가 깔려있다.
주로 50∼60년대에 영,불,독,포르투갈,스페인 등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제국주의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거의 예외없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지향해왔다.
그러나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이 개혁ㆍ개방의 물결을 타고 내치에 힘겨워 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어 원조도 점점 줄어들게 되자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독재자들은 앞을 다투어 서방세계에 손을 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대통령,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대통령,케냐의 다니엘 모이대통령,잠비아의 케네스 카운다대통령 등은 부족ㆍ종족간 알력ㆍ정정불안 등을 들어 다당제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기는 하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때 검은대륙의 민주화운동은 현재로서는 맹아기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대장정에 나선 「민주호」는 서방의 경제원조라는 돛을 달고 기아와 빈곤을 바람삼아 격랑을 헤쳐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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