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파스가 살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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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보세요?"

남편이 몸이 아프다며 좀 일찍 오라는 전화를 했다. 우리는 구멍가게를 하고 있어 교대로 가게를 본다. 그때는 마침 내가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전화 끊은 지 5분도 채 안 됐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아픔을 참는 게 느껴질만큼 고통스러운 목소리였다. "안 되겠다. 응급실에 좀 가야겠으니 지금 빨리 와라, 아으윽…."

놀란 나는 빨리 걸어 5분이면 될 거리를 택시를 잡아타고 허둥지둥 달려갔다. 남편은 가슴이 조여오고 숨이 막힌다며 허리도 제대로 못 편 채 웅크리고 있었다. 남편을 부축해 택시를 잡으러 가는데 고통이 어찌나 심한지 몸이 조금만 흔들려도 어쩔 줄을 몰라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도 안전턱 같은 데를 넘느라 차가 흔들리면 "기사양반! 운전 좀 살살 하소. 나 죽소" 하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얼마쯤 가자 남편은 점점 죄어오는 가슴을 움켜쥐더니 "만약에… 만약에 내가… 숨을 잘 못 쉬거든…"하며 숨을 몰아 쉬었다. 남편 말인즉슨 이렇게 저렇게 심장 마사지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 채 꼭 유언이라도 들은 것 마냥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급해진 택시 기사 또한 병원 건물이 보이자 비상등을 깜박이고 경적을 울리며 "손님! 조금만 참으세요. 병원 다 왔습니다" 하며 남편을 격려했다. 황급히 응급실 앞에 차를 대니 건장한 청년 둘이 나와 남편 옆구리를 끼곤 조심조심 침상에 데려다 뉘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와 코에 산소공급 호스를 끼우고 심장 박동 보조장치를 설치했다. 남편은 여전히 꼼짝을 못했다. 화장실 갈 여력이 없어 커튼 치고 볼 일을 볼 만큼.

피 검사, 엑스레이 검사, 초음파 등 검사란 검사는 다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일각이 여삼추' 바로 그것이다. 옆 병상 환자는 의식불명인지 가족들이 울며 불며 난리가 났다. 나 또한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데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별 이상이 없는데요. 예전에 환자도 모르는 새 폐렴이 지나간 것 같고."

나는 환자가 숨도 잘 못 쉬며 아파하는데 무슨 소린가 싶어 기가 막혔다. 시어머님께서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사실을 떠올리니 더욱 초조했다. 그렇게 하루 해가 넘어갈 무렵 의사가 부르더니 말했다.

"제가 다른 병원 있을 때도 비슷한 환자가 있었는데요, 담이 결려도 이런 증세가 나타나더라고요. 파스 한번 붙여보실래요?"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파스를 사와 붙였다. 아 그랬더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다 나았다"며 집에 가자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곧 숨이 끊어질 듯 끙끙대며 들어간 응급실에서 거짓말처럼 씩씩하게 걸어나와 시내를 한 시간이나 쏘다녔다. 파스 값 한 번 비싸게 물었지만 통증 없이 숨쉴 수 있는 고마움을 뼈져리게 느끼며.

심희선(45.주부.부산시 동삼1동)

29일자 주제는 '고향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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