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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性대결'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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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호사가들에게 또 하나의 구경거리가 생겼다. 내일부터 박세리 선수가 벌일 '성대결'이다. 골프에서의 성대결은 올 들어 다섯번이나 치러졌으나 모두 여성의 '완패'로 끝났다. '여자 중에서는 최강인데…'(아니카 소렌스탐), '지역 예선까지 거쳤으니…'(수지 웨일리), '10대의 풋풋함과 당돌함으로 덤벼본다면…'(미셸 위), '남자 못지 않은 장타니까…'(로라 데이비스), '나이가 들면 남녀의 힘 차이가 좁혀진다는데…'(잰 스티븐슨) 등의 기대감이 차례로 무산됐다.

이 정도면 성대결은 더 이상 관심사가 안 될 것 같은데 이번에는 '박세리'란다. 박세리가 누군가. 승부사 기질로 똘똘 뭉친 '맨발의 투혼'이 아닌가. 그 엄청난 '끼와 깡'이라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대회장은 거리가 짧고 러프도 깊지 않은 골프장이고, 출전자 가운데 정상급 여러명이 불참하기까지 한다는데…. 사람들은 또 슬그머니 기대감을 갖게 된다.

승부는 뚜껑이 열려 봐야 아는 것. 그러나 '진짜 제대로 된 남자 대회'라면 박세리 선수 역시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힘과 힘이 격돌하는 스포츠에서는 좋건 싫건 간에 남녀 간의 격차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역대 다양한 성대결에서는 모두 남자가 승리했다. 여자가 이긴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30년 전 빌리 진 킹과 바비 리그의 테니스 대결에서는 킹이 이겼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미스매치였다. 당시 킹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리그는 환갑을 앞둔 중늙은이였다. 전성기의 남자 선수와 맞붙었더라면 킹은 결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골프에서 성대결이 계속 추진되는 것은 종목의 특성상 남녀의 성 차이가 가장 작을 것이라는 세간의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골프에서는 체력이나 파워 외에 판단력.집중력.끈기.정확성.섬세함 등도 경기력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끈기나 섬세함 같은 덕목이라면 여자가 남자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게 없지 않은가.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골프에서도 근력의 차이로 야기되는 샷 거리의 차이는 좀처럼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스포츠 과학자들은 여자의 운동 근력이 남자의 60~70% 정도라고 본다. 몇몇 전문가는 골프의 경우 최소한 파5홀에선 25m, 파4홀에선 15m 가량의 거리 핸디캡을 주지 않는 한 여자는 남자와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결론이 뻔하게 나있는 스포츠에서의 성대결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만약 흥행 때문에라도 꼭 해야겠다면 '대결적 측면'이라도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가 이기고 여자가 지는' 결과를 되풀이해 좋을 게 뭐가 있나. 설령 인위적으로 여건을 조성해 여자 선수로 하여금 '남성의 벽'을 돌파하게 한들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포츠 각 종목에는 남녀 구분만 있는 게 아니다. 연령 구분이나 체급 구분도 있다. 주니어 선수와 성인 선수를 겨루게 해 '연령의 벽'을 넘거나, 플라이급을 헤비급과 맞붙여 '체급의 벽'을 넘으려는 시도는 없는데 왜 '남성의 벽'은 도전의 대상인가. 마초이즘에 젖는 것도, 아마조네스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도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소렌스탐은 성대결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쉬움? 분노? 후회? 좌절감? 무력감? 적개심? 어떻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남녀는 대결의 상대가 아니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부족한 것을 보완해 나가는 상대라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김동균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