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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소설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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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최종심사를 하고 있는 임철우.박범신.최원식씨(왼쪽부터). 김성룡 기자

최종심에 오른 15편의 작품들은 대체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저마다 상당한 습작기를 거친 녹록하지 않은 솜씨들이었으나, 아쉽게도 심사위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작품은 드물었다. 의욕적으로 다양한 장치들을 펼쳐놓고도 막상 제대로 뒷감당을 못하고 만다든지, 나름대로 무리 없이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형식과 발상의 진부함이랄까 안이함이 눈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 근래 우리 소설의 한 경향이랄까. 뭔가 색다르게 써야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기발한 착상, 특이한 스토리 전개 방식 따위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작품도 있었다. 요컨대 전반적으로 인물과 주제를 밀도 있고 깊이 있게 형상화해 내는 능력이 아쉬웠다.

아내의 배신으로 감옥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고래'는 차분한 심리적 서술이 강점이다. 그러나 후반부 이후 짜임새의 허술함, 모호한 고래의 이미지, 또 군데군데 드러나는 작위적 설정이 흠이었다. 고래잡이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으나 일관성이 부족하고, 결말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호하다. 열차사고 생존자의 트라우마(Trauma)를 다룬 '나비의 눈물'은 안정된 문장과 호흡이 돋보였으나, 아쉽게도 극적인 요소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소설의 핵심이라 할, 세상과 가정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주인공의 내면적 동기가 충분한 설득력을 얻기엔 어딘가 미흡했다. '이룩과 조'는 두 남자를 대상으로 한 여주인공의 내적 진술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다. 극적 구조를 최대한 배제한 채 화자의 진술 만을 집요하게 뒤쫓는 형식인데, 구성의 단순함과 더불어 톡톡 끊어지는 단문으로 일관된 문체가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와인의 눈물'은 평생 '사랑을 한 번도 완벽하게 소유해 본 적이 없는' 고독한 여자의 이야기다. 밤 늦은 사무실에서 홀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여자의 황량한 내면 풍경을 담담하고 절제된 톤으로 안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두 남자 사이에 허망하게 떠있을 뿐인 여자. 황폐한 현실을 막연한 기다림 만으로 견뎌내고자 하는, 상처받은 여주인공은 물론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섬세한 심리묘사를 바탕으로 소설 전체를 안정감 있게 끌고나간 만만찮은 저력에 점수를 주어, 한동안의 조율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날의 건투를 바란다.

◆ 심사위원=박범신.최원식.임철우(대표집필 임철우)

◆ 예심위원=구효서.김형경.박상우.우찬제.신경숙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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