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법정서 신발 던지던 사람들 지금 국정 움직이고 법원 신뢰 안 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용훈(64.얼굴) 대법원장이 18일 대구 고.지법에서 판사와 직원들을 상대로 훈시한 내용의 한 구절을 놓고 법원 내부에선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일반 국민뿐 아니라 정치권에서조차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말을 꺼냈다. 이어 "과거 1972년부터 87년까지 15년 동안 법원은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정권 유지의 도구로 전락하는 바람에 70년대는 법정에서 신발을 벗어던지고 노래를 부르는 사태가 계속됐다"고 회상했다. "그때 법정에서 노래 부르고 한 사람들이 지금 국정을 움직이고 있고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우리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은 '법정에서 신발을 벗어던지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의 법원 불신'이다

일각에서는 이 대법원장의 발언이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신뢰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은 "현재 정치권에 있는 분들은 어떻게 보면 70년대 독재에 항거하다 사법적 피해를 본 피해자일 수 있다"며 "대법원장의 발언은 당시 국민의 편에 서지 못한 것으로 인해 사법부가 아직도 신뢰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판사들은 이 대법원장의 발언이 정말로 '법정에서 신발을 던지고 노래한 사람'들을 옹호한 것이라면 부적절한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야 어떻든 법정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실정법을 어긴 사람들을 두둔하는 것 같아 법원의 조직원으로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취임 후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 등을 주장해 온 이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에 대한 현 정부와의 교감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은 "어떤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 게 아니다. 법원이 신뢰받는 기관이 돼야 한다는 큰 틀에서 대법원장의 발언을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법원장은 19일 대전고.지법을 방문한 자리에서 "법원이 재판 모습을 제대로 갖추려면 (검사의) 수사 기록을 던져 버려야 한다. 공판중심주의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병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