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후에나 변화 기대/전인영 서울대교수ㆍ북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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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9기 인민회의는 분위기 쇄신용 인 듯/대한ㆍ미ㆍ일 정책변화 따른 대비책필요
오는 22일 실시될 북한의 제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것은 이번 선거가 소련및 동유럽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발생되고 있는 시점에서 실시되는데다가 전례없이 6개월 이상을 앞당기는 조기선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지난번 제8기 대의원선거가 4년마다 열리게 돼 있는 헌법규정보다 9개월후에 실시된 것과 비교하면 이번의 조기선거 결정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제76조에 의하면 최고인민회의는 헌법및 법령을 채택 또는 수정하며,국가의 대내외정책의 기본원칙을 수립하고 주석을 선거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또 부주석과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및 위원들과 정무원총리를 선거 또는 소환하고,국가의 인민경제발전계획과 국가예산을 승인하고,전쟁과 평화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등의 권한을 지닌다.
이러한 최고인민회의의 권한들 중에서 우리의 관심과 추측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주석및 부주석의 선거,대내외정책의 기본원칙 수립,그리고 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를 결정하는 권한이다.
일본의 공동통신은 이번의 돌연한 선거실시 결정은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었다. 현재 북한의 국내외 상황을 분석하여 볼때 김정일의 주석승계설을 가볍게 일축하기는 어렵다. 김정일의 승계설이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최근 공산권의 사정이 급변했고 그로 인해 북한이 불가피한 압력과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둘째로 김일성이 이미 78세로 사회주의국가 지도자들 중에는 최고령층에 속한데다 등소평도 공식적으로 은퇴했고,셋째는 73년이후 김정일의 권력계승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이미 오랫동안 일선에서 당과 정부의 거의 모든 업무를 관장해 왔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상태에서 탈피하기 위하여는 오랜 자신의 노선과 정책을 스스로 변경하기 힘든 김일성 대신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새로운 대내외정책을 수립ㆍ추진하는 편이 훨씬 용이하고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승계가능 전망이나 분석은 다소 성급한 감이 없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의 내부사정이나 정책결정과정을 잘 모르고 부족한 자료를 갖고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북한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데서 생긴다.
주석승계 가능성에 대한 반론을 든다면 우선 북한은 동구의 사정과 너무 다르고 혁명1세대인 김일성의 지위가 너무도 공고하다는 점이다. 비록 북한에도 개혁을 원하고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해도 이들은 다양한 사회조직및 효과적인 통제정책 때문에 결집된 세력으로 형성되기가 극히 힘들며 대부분의 인민대중들은 김일성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다.
작년에 총살당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는 65년에야 일선에 등장한 인물로서 70년대까지도 국민들에게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허용했었으며 지리적으로도 서구의 영향과 동구및 소련의 영향력 침투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비록 경제난에 직면하고는 있으나 외부사상의 침투가 거의 불가능하고,한미 양국과의 대결이라는 안보환경이 정권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한 김일성이 아직 건재하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주석직을 이양하라고 감히 제언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더구나 수령의 후계자로 확정되어 있는 김정일이 구태여 주석직을 인계받아야만 개혁이나 개방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권위의 화신인 김일성이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안정세력의 중추역할을 담당하는 가운데,김정일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제한된 범위의 경제개혁정책과 통제정책의 완화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제9기 대의원선거를 서둘러 실시하는 이유를 권력승계가 아닌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북한체제와 정권의 정통성및 신임의 재확인,관료화의 병폐로 민원의 대상이 되거나 무능한 당간부들의 교체를 통한 분위기쇄신,새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의 결정에 의한 정무원 총리의 경질과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경제정책과 대미ㆍ일,또는 대한정책의 제시등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현재로서 보다 의미있는 근본적 변화는 김일성 사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설사 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해도 정치적 개혁없는 경제개혁은 한계가 있기때문에 권력승계여부보다 새로 구성되는 최고인민회의가 어떠한 대남,대미ㆍ일제의를 해올 것인가에 대비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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