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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백악관 분위기 회담장엔 친밀함보다 격식이 앞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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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을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부시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뒤로 미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화가 보인다. 워싱턴=안성식 기자

#장면 1=2005년 6월 1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오찬장으로 가기 전 기자들과 만났다. 부시 대통령은 경기도 동두천에서 50대 여성이 미군 트럭에 치여 숨진 사건(2004년 6월 발생)에 조의를 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차분한 어투로 "여러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 각하의 좋은 자문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말에 나선 노 대통령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부시 대통령을 네 번째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이견이 없음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시 대통령을 향해 "어떻습니까. 한.미 동맹 잘 돼가고 있다고 해도 괜찮습니까"라고 물었다. 긍정적 대답을 자신하는 모습이었다.

#장면 2=2006년 9월 15일. 두 정상은 오벌 오피스에 다시 나란히 앉았다. 이번에도 오찬장으로 가기 전 기자들과 만났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부시 대통령의 목소리와 제스처는 컸다. 한 한국 기자가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에게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의 내용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를 묶어서 질문했다. 부시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먼저 나서 "한국 국민에게 미국 정부가 한반도 안보에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주 좋은 대답이다. 감사하다"고 호응했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 "부시 대통령은 생각이 빠르다"=9.15 정상회담에 임한 노 대통령의 태도는 대단히 신중했다. 부시 대통령과의 여섯 번째 정상회담 중 어느 때보다 고심하며 준비한 회담이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유럽 순방 중에도 노 대통령은 미국에서 실무 협상을 하고 온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으로부터 수시로 진전된 보고를 받는 등 정상회담에 바짝 신경을 썼다고 한다.

회담 직전 노 대통령은 참모회의를 열어 부시 대통령의 회담 스타일을 설명하며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은 생각과 말이 빠르게 전개된다. 언제 어떻게 할지에 대비해 미리 잘 정리해둬야 한다"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 어느 때보다 힘겨웠던 회담=노 대통령은 그동안 부시 대통령과의 접촉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왔다. 이라크 파병 방침을 정하고 만난 2003년 1차 회담에선 "평화적 해결"에 합의했다. 지난해 6월 회담에선 부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로 점잖게 부르는 데까지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6자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마당에 북한은 올 7월 5일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했다. 그러자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작권 환수를 놓고 양분된 국내 여론도 노 대통령에겐 부담이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9월 정상회담에서도 설득이 어려울 것 같다"(8월 13일 언론사 논설위원 간담회)고 토로할 만큼 여건은 좋지 않았다. 회담의 가시적 성과에 대한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그래서 회담의 성과를 내세우는 정부 관계자들의 외교적 수사가 화려했지만 실제 협상은 매우 힘겨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자주' 외칠 때와 다른 모습=그는 이어 "그런데도 북핵 문제로 긴밀히 협의하고 6자회담 재개를 촉진하기 위해 범정부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부시 대통령에게 극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국내에서 '자주'를 외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김정일'로 불렀다. '미스터 김정일'보다 폄하하는 표현이다. 노 대통령에게는 '대통령 각하(Mr. President)' 라는 호칭을 썼다. '감사하다'는 말도 "Thank you, sir"라고 했다. 종전의 다섯 차례 회담에선 '대화하기 편한 상대(easy man to talk to)' '나의 친구(my close friend)' '민주적인 지도자(democratic leader)' 등으로 지칭했었다. 친밀함 대신 격식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담 내용의 발표 형식도 공동성명이나 정식 기자회견이 아니라 '언론 회동(press availability)'이란 생소한 형태였다. 북한 문제와 한.미 동맹의 미래에 관한 양국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봉합된 회담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정상회담의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김성탁 기자<sunty@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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