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양주 왈, 공자 왈 "천하보다 나를 위해 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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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김시천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 272쪽, 1만2000원

중국 고전에서 '이기주의'의 뿌리를 찾는 일은 비교적 쉽다. 양주(楊朱)가 있기 때문이다. 양주는 "내 정강이 털 한 가닥이 천하보다 중(重)하다"고 해 후대에 이기주의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인물. 저자가 양주를 만난 건 10여 년 전이라고 했다. 첫 만남부터 무척 끌렸던 모양이다. 언젠가는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양주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사람이다. 공자보다는 늦고, 맹자보다는 이르다. '천하보다 나를 위해 살라'고 외쳤다. 이른바 위아(爲我)-이기주의다. 그 바람에 '나보다 천하를 위해 살라'고 주장한 유학자들에게 두고두고 호된 공격을 받았다. 맹자는 그 공격의 선봉장이었다.

양주가 "나를 위해 산다"는 학설을 주장하는데, 이에 따르면 터럭 하나를 뽑아 온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맹자'진심장).

하필 이것이 양주에 대한 첫 기록이라는 게 그에겐 불행이었다. 이후 2400여 년간 양주가 극단적 이기주의 혹은 쾌락주의의 대명사로 비난을 받은 건 오로지 맹자 탓이다. 왜 맹자는 그리 양주를 미워했을까. 작가는 양주를 위한 몇 가지 변명을 찾고 있다. 우선 당시 양주는 맹자보다 훨씬 유명했으며, 제후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또 맹자의 비난과 달리 그의 '위아설'은 극단적 이기주의와는 분명히 달랐다는 것이다. 맹자보다 600년 뒤에 나온 '열자'는 양주의 그 유명한 털 한가닥 얘기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적고 있다.

금선생이 양주에게 물었다. "당신의 몸에 돋은 털 한 가닥을 뽑아 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겠습니까?"

양주가 대답했다. "세상은 털 한 가닥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금선생이 다시 물었으나 양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자'양주).

극단적 이기주의가 아니라면 실체는 뭔가. 작가는 '위아설'의 흔적을 더듬어간다. 실마리는 '여씨춘추'에서 나왔다. 여기엔 '나의 생명은 나를 위해(爲我) 있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위아는 곧 자신의 생명을 가장 중시하는 삶 중심주의 사상이었던 셈이다. 더 뒤져보니 위아설은 맹자가 그리 존경했던 공자님 말씀에도 있었다. '위기(爲己)'가 그것이다.

공자 가라사대, '자신을 위한다(爲己)'는 것은 배운 바를 신중하게 실천에 옮긴다는 뜻이고, '남을 위한다(爲人)'는 것은 배운 바를 말로만 한다는 것이다('논어집해').

주희는 주석을 달아 '위기는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공부하는 것이고, 위인은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공부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위기'는 곧 큰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작자의 이기주의 탐방은 논어.맹자는 물론 장자에서 여씨춘추까지 거침없이 이어진다. 마무리는 다시 양주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제 몸을 위해 산다면 세상은 잘 다스려 질 것이다." 그런 작가를 좇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중국 고전의 '이기적'인 향기에 흠뻑 취하게 된다. 다만 약간 삐딱하게, 비틀어진 채로. 작가 스스로 이 책을 '소인배들의 중국 고전읽기'로 정의한 이유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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