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소 「공다툼」… 민자내 짙은 그늘/민주계와 노골적 마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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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정무,「정치적 홍보」 활용에 제동/YS측,적극대응으로 상대 기꺾기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이 대소 수교에 주춧돌을 놓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29일 귀국해 그가 앞으로 이번 방소 결과를 국내 정치의 입지 강화에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심이다.
더구나 이번 방소단의 활동 이면에는 김최고위원과 박철언 정무1장관과의 미묘한 대립관계가 심상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분위기속에 펼칠 김최고위원의 다음 단계 구상과 민자당내의 파워게임 향방이 궁금하다.
김최고위원은 30일 청와대를 방문,노태우대통령에게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자신과의 회담내용을 소상히 설명,일단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했다.
모스크바에서의 활약상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역할을 자부하고 있는 김최고위원으로선 집권당 간판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데 이를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다. 우선 여권내 각종 모임 참석,언론회견을 통해 적극 홍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최고위원은 정재문의원을 스칼라피노교수(미버클리대)에게 보내 중국 방문 주선도 부탁해 놓아 명실공히 북방외교의 주역으로 3당통합후 자신의 이미지를 심으려 부심하고 있다.
그는 3당통합 이후 그에게 쏠리고 있는 「변신」 비난을 막고 여권에서 위치를 확보하는데는 북방 외교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야당투사가 아닌 집권가능 인물로서의 소질과 잠재력을 북방과 남북 문제에 대한 기여로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지지자들에게 3당통합의 정치적 모험을 감행한 논리적 근거로 방소성과를 제시하고 있는데 열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이번 방소로 대국민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김최고위원에게 소련카드는 3당통합 이후 각종 개혁노선 수정 과정에서 드러난 민자당내의 한계를 덮어주는 효과도 있었으며 4월말 전당대회에서 대표 최고위원이란 민자당의 얼굴로 등장하는데도 자연스럽게 기여할 것으로 믿고 있다.
김최고위원은 노대통령에게도 자신의 독특한 외교 채널이 적극 평가되길 바라고 있고 남북관계 개선에서의 역할을 할당해줄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김최고위원의 구상과 야심은 북방ㆍ남북한 분야에서의 독점적 창구를 향유했던 박철언정무장관을 직접 난처하게 만들것이 확실하며 이는 따지고 보면 노대통령의 업적과 통치 방향에 경쟁자적 위치를 노리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김최고위원의 이같은 속셈을 읽고 있는 박장관은 처음부터 이번 방소단에 끼는 것을 싫어했고 김최고위원의 「정치홍보」를 앞세운 외교 스타일에 비판적이었다. 노대통령도 김최고위원의 「열성」을 존중하기는 했으나 내심 흔쾌한 입장은 아니다.
예상했던대로 박장관은 모스크바에서 김최고위원의 대소 접근 자세에 노골적으로 비판적이었다. 김최고위원의 국내 정치용 제스처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고르바초프와 김최고위원의 면담이 우리 외교의 총체적 역량 확대의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김최고위원이 마치 그것이 자신의 역량인 것처럼 외교성과를 독점하려는데 거부감을 표시했다.
김최고위원과 박장관과의 이같은 불협화음은 민자당내는 물론 국민들에게 두사람의 관계가 상하 또는 제휴관계가 아니라 경쟁 관계가 아닌가 의심케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최고위원과 민주계는 대단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김최고위원은 이번 방소를 통해 박장관을 길들이기로(?) 처음부터 마음 먹은 듯하다. 수행이 아닌 동행임을 내세우는 박장관을 끌다시피 데리고 간 것은 그가 대소관계에 갖고 있던 기득권을 시험해보고 이용하자는 계산이 있었으며 이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자 박장관에 대한 전략을 바꾼 것같다.
이를테면 구슬러 데려가되 이따금 매를 들겠다는 자세다. 노대통령의 「분신」이라고 하니 함부로 하지는 못하겠지만 상처를 입힐 것은 입히겠다는 것이다.
김동영총무가 귀국 당일 박장관의 태도에 대해 『그런식으로 나오면 사면초가가 되고 말것』이라며 『그대로 두면 자유당때 이기붕처럼 될 것이고 노대통령도 그를 더이상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이 민주계의 행동 강령이 표출된 것이 아닌가 분석된다.
그러나 김최고위원과 민주계의 전략이 제대로 실현될수 있을지는 속단하기 어렵고 장애가 너무 많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박장관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박장관은 이미 노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입지를 굳혀왔으며 절대적 신임을 갖고 있어 김최고위원의 응징이 자칫 노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질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모스크바에서의 외교 행태를 민정계측에서 문제삼을 태세여서 외교성과를 국내 정치에 무작정 활용하는데도 한계가 예상된다.
또 물의를 빚고 있는 원외 지구당위원장 인선,금융실명제 연기등 민자당이 해결하기 벅찬 당면 현안 문제들이 그의 외교 성과를 가릴수 있는 소지도 안고 있다.
또 그의 외교 채널이 정상통로가 아니라는 점에서 박장관의 영향력하에 있는 정부내 북방 담당 창구가 이의 효용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나올 경우 김최고위원이 박장관을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최고위원의 태도 역시 김영삼최고위원의 적극적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김종필최고위원은 『대소접근에 속도위반은 없지만 기대가 너무 성급한 것같다』며 『소련이 하루이틀 사이에 후딱 바뀌는 나라가 아니다』고 대소러시에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김최고위원이 박장관과 갈등을 빚고,김종필최고위원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때 민자당의 내분 상태는 점점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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