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지동 추모공원 흔들려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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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실마리가 풀리는가 싶던 서울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 사업이 다시 암초에 부닥쳤다. 서울시는 최근 지역 내 화장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이기자 추모공원 내에 국가중앙의료원을 세우고 여기에 2010년까지 화장로 11기를 짓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교통부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추모공원 설립이 급하다고 해서 그린벨트를 해제했는데 이제 와서 병원을 세우겠다니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파주시 용미리 서울시립화장시설의 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르는 2010년에는 화장대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서울시의 책임이 크다.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은 전임 시장이 화장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시장 공관까지 옮겨 가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보인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명박(李明博)시장이 지난해 선거 기간 중 해당지역 주민의 표를 의식해 규모 축소를 공약한 이후 줄곧 표류해 왔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주민 설득을 게을리하고 시간을 허송하다 뒤늦게 건교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국가중앙의료원 건립안을 들고 나온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화장장 건설 용도로 그린벨트 해제에 동의했기 때문에 병원 설립은 허용할 수 없다는 건교부의 입장은 그린벨트 관리에 책임있는 부서로서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새 계획은 반대하는 주민을 설득해 화장장 건립을 관철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을 건교부는 살펴야 한다. 중앙의료원은 국가시설인 데다 특히 의료시설이 포함된 추모공원을 짓겠다는 서울시의 절충안이 주민 대다수와 합의된 내용이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추모공원이 건교부의 반대로 백지화된다면 화장대란이 닥치게 되고 장묘문화 개혁은 물건너 간다. 부안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의 진통에서 보듯이 혐오시설은 주민과의 합의 없이는 유치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대승적 차원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