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세 사는 서민만 울리는 부동산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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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세 대란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정부의 대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세입자들은 당장 들어갈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판에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에 불과하다"는 구두선만 되뇌고 있다. 고작 내놓은 대책이란 것도 이미 시행 중인 정책의 재탕이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들뿐이다.

전세난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설명대로 수급 불균형이다. 문제는 그 수급 불균형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서울에 살겠다는 사람은 늘어난 데 비해 입주 물량은 이 정부 출범 이후 계속 줄었다. 구입하든, 전세로 들어가든 집이 있어야 하는데 각종 규제로 주택 공급을 막아 놓으니 집값이 오르고, 그 여파로 전셋값도 오른 것이다. 여기다 오른 집값을 잡는다며 주택에 대한 세금을 잔뜩 올려 놓으니 집주인의 세금 부담마저 전셋값에 전가되고 있다. 특히 집을 가진 사람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사례가 늘어났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전세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집 없는 서민 입장에선 집세도 오르고, 구하기도 어려운 이중고에 빠졌다. 강남 집값을 잡는 데 매진한 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집값은 못 잡고 애꿎은 서민만 잡았다.

전세는 주택을 구입할 능력이 없는 서민이 원금 손실 없이 안정적으로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주택임차 방식이다. 모든 사람이 집을 살 수 없고, 정부가 책임질 수 없다면 누군가 집을 짓고 빌려주어야 한다. 이 정부가 투기의 원흉으로 몰아붙이는 다주택 보유자들은, 실은 정부가 제공하지 못하는 서민 주거의 실질적인 공급자였던 셈이다. 이들에게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물린 결과가 전세 물량의 퇴장과 전셋값 폭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세입자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면 좋다. 그렇지 않다면 집없는 이들이 셋집이나마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도리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엉뚱한 부동산정책으로 이들을 거리로 내몰아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