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예술영화라고 부르지 말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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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게 무슨 얘깁니까. 예술을 예술이라고 하지 말라뇨?

스크린 독과점 논란 관련 세미나에서 생긴 일입니다. 작은 영화 보호 방안 논의 중 '피터팬의 공식' 조창호 감독이 울컥 하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술영화의 관객이 있습니까? 전 없다고 봅니다. 관객 없는 영화를 틀라고 극장에 강요할 수 있습니까?"

정재형 동국대 교수는 한발 나가 예술영화 전용관 건립 자체를 냉소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공자의 '경이원지(敬而遠之)'란 말을 인용했습니다. 겉으로는 존경하되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멀티플렉스 안에 썰렁한 전용관 하나 만들어 놓고 네들끼리 놀라고 귀양 보내는 격"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들은 "예술영화를 예술영화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실제 많은 독립.예술.저예산 감독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 말이 싫어서가 아니라(하긴 모호하기도 합니다), 그런 딱지가 붙는 순간 관객에게 외면받기 때문이지요. '예술영화=재미 없는 영화'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딱합니다. 조 감독의 고충이 이해되면서도 예술을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 부를지 고민입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도대체 그 많던 시네필들은 어디로 갔을까입니다. 1994년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 3만 명이 들어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가 24만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현재 예술영화관객은 1만 명 선으로 집계됩니다. 대박이면 3만 명입니다. 김기덕 감독은 "'시간'을 20만 명만 봐주었으면 한다"고 했지만 배급관계자 역시 최대치는 3만이라고 귀띔합니다. '시간'은 지난 주말까지 2만2000명이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영화계는 관객과 취향의 다양성 개발이라는 과제를 맞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영화관람 환경 자체일 것입니다. 이제 영화는 멀티플렉스 안에서 쇼핑.식사.게임 등 다른 오락과 경합하며 소비자를 끄는 패키지 여가상품의 하나로 존재합니다. 멀티플렉스 안에서 도스토옙스키를 펼쳐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 한국은 클래식음악 시장이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왕성하고, 고급 공연일수록 잘되는 시장입니다. 그런 고급 문화의 수요, 심지어 '문화적 허영'의 대상이 되기에 우리 예술영화는 무엇이 부족한 걸까요.

충무로는 이제 '웬만한 한국 영화가 외화보다 낫다'는 관객의 인식을 굳혔습니다. 이제는 다양성 영화를 보는 게 문화적으로 세련된 것이라는 인식을 끌어낼 때입니다. 예술영화계에도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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