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임대주택이 집 걱정 없앤다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유행가 가사처럼 꼭 그림 같은 집이 아니더라도 내 집을 갖겠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가정을 이루면 우선하게 되는 소박한 소망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소망을 뿌리부터 바꾸겠다고 나섰다. 즉 주택에 대해서만은 소유가 아니라 거주의 개념으로 의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2년까지 임대주택 건설에 88조원을 투입하고, 공공택지에서 임대주택 분량을 늘리며, 25.7평 이상의 중대형 임대주택을 늘려 중산층도 임대주택에 살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지다. 이뿐 아니라 임대주택이 저소득층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부 재료 등도 고급화하겠다고 밝혔다.

주택정책의 초점을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임대주택에 살도록 맞춘 것으로 비친다. 내 집을 마련하지 않아도 살 집이 있다면 좋은 일이다. 또 저소득층의 주거복지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대규모의 임대주택 단지를 건설해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선진국들은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가 관리하기도 어렵고, 저소득층이 원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슬럼화하는 경우가 많아 주거복지의 방향을 직접 지원 쪽으로 바꾸었다.

이들 국가에선 공공 임대주택도 가능하면 줄여 나가고 있다. 영국은 1980년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했던 공공주택을 대거 민간에 분양했다. 반드시 필요한 일부 저소득층을 제외하고는 임대주택도 민간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대신 주거비 직접 지원 방식 등을 동원한다. 미국 주택정책의 초점도 자가 보유율 제고와 저소득층 주거비 지원에 맞춰져 있다.

공공 임대주택 건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스스로 주택 마련을 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에 국한해야 한다. 특히 공공 임대주택 116만 가구 건설이라는 목표량에 매달려 그린벨트까지 훼손하는 것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저소득층 임대주택을 도시 외곽 그린벨트에 건설하는 것은 그린벨트 훼손뿐 아니라 서민의 생활편의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기 때문이다. 일용직 근로자 등 저소득층일수록 일자리 가까이에서 살려고 한다. 최근 고시텔 화재 참사에서 화를 당한 피해자들의 상당수도 그런 경우다. 이처럼 수요에 어긋난 임대주택을 공급하니 실제로 건설된 임대주택에는 입주자가 모자라 소득 제한을 상향 조정해주는 사례까지 생겨나는 것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최소한의 공공 임대주택 이외의 나머지 임대주택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수요에 맞춘 공급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다. 현재 민간 임대시장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1가구 다주택 보유에 대한 징벌적 규제다. 이는 1가구 다주택 소유자를 투기꾼으로 죄악시하는 시각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정책 결과의 일부분이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전세대란인 셈이다. 그동안 1가구 다주택자들이 상당 부분 전세시장의 공급원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엄청난 세금을 투입해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보다 민간의 투자를 활성화해 임대주택 공급이 이뤄지도록 하는 쪽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 이는 다른 나라의 선례나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됐다. 정부가 할 일은 충분한 택지 공급 등을 통해 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짐으로써 주택 투기가 불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또 정부는 국민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 그에 맞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임대주택을 지어 주면서 의식을 바꾸라는 것은 정부가 개인의 소망까지 통제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집 걱정 없는 사회'라는 야무진 꿈에 집착한 나머지 임대주택 건설에 '올인'하기보다 자가 보유율을 높이고 민간 임대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저소득 계층을 위한 주거비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균형 잡힌 주택정책이다.

신혜경 논설위원 겸 도시건축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