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에만 치우쳤던 정책 바로잡기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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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합당후 첫 개각… 새 경제팀에 바란다
3당 합당 이후의 첫 개각이면서 경제개혁을 주도해 온 경제팀의 전면 교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 이번 개각에 대해 우리는 각별한 관심을 갖고 앞으로의 국정운영 방향을 지켜 보고자 한다.
거대여당 출범 이후의 조각이나 다름없는 큰 폭의 개각이 갖는 의미는 새로운 정치구도 아래 국가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줄기를 잡고 난마같이 얽힌 경제난국이나 치안부재의 사회혼란을 수습해 갈 것이냐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어느 내각 개편 때보다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새로 입각한 인사들의 면면도 그 능력과 인품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해도 그들이 걸어온 경력들만 봐도 국정을 나누어 맡기에 손색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 내각에 대해 거는 기대를 가급적 줄이고자 한다. 그것은 과거 인물이 바뀔 때마다 걸었던 기대가 언제나 실망과 체념,때로는 분노로 끝난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물러난 각료들만 해도 그중에는 볼 만한 실적을 남기고 국민이나 주위 사람들의 아쉬움을 산 인사들도 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나라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국민들의 생활을 편안케 하기 보다는 불안하고 짜증스럽게 만든 면이 더욱 부각되어 그 책임을 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같은 실망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을 때 의당 기대를 모아야 할 새 내각의 출범이 기대보다는 조심스런 관망으로 맞아진다는 것을 당사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면면만을 보고 실망할 이유도 없는 것은 새 내각의 치적은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새 각료,특히 경제각료 중에 과거 제3공화국이나 제5공화국의 각료를 지낸 인사들이 들어 있다든가,그들의 주장이 성장론을 우선하고 혹은 지금 진행중인 제도개혁에 소극적이었다는 점등을 들어 불만이나 우려를 표시하는 일이 없지 않으나 이같은 자세도 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우리가 지나친 기대나 성급한 평가를 유보하는 것도 앞으로의 실적만이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우리는 새 내각에 거는 바람 몇가지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새 내각에 바라는 첫번째 주문은 신뢰할 수 있는 행정을 펴 달라는 것이다.
솔직이 말해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가장 큰 당혹감은 정부가 하는 일을 믿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개각의 특징 중 하나는 경제팀의 전면적인 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경제정책이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함으로써 나라 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더 큰 잘못은 국민들의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심화시켰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빈부의 격차,계층간의 위화감,지역간 불균형 해소가 우리 사회ㆍ경제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수십년에 걸쳐 누적돼 온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을 마치 하루아침에 뜯어 고쳐 새 세상을 만들어 줄 듯이 서둘러대다가 현실과의 괴리에 부닥쳐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불신의 벽만 두텁게 만든 것은 아무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경제팀뿐만 아니라 취임후 몇달내에 강력범을 일소,부녀자들이 밤거리를 안심하고 활보할 수 있게 해놓겠다는 식의 공소한 공약을 내걸었던 각료가 있었음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새 내각은 이같은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화려한 그림을 내보이기 이전에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착실히 다져나감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전력을 경주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은 이미 현실성 없는 약속에 우롱당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제정책이 정치권의 논리에 너무 좌우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지금 우리 경제는 80년대 이래 최악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수출ㆍ성장이 모두 침체된 가운데 국민들은 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업은 투자할 의욕도,활기도 잃고 있다.
불과 1년여 전까지만 해도 세계 여러 나라의 부러움을 사던 우리 경제가 어째서 이처럼 참담한 모습을 띠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지적해 왔기에 이 자리에서 다시 중언부언하는 것은 삼가려 한다.
또 이처럼 심각한 국면의 경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느냐도 새 경제팀의 능력과 수완에 맡기고 앞질러 취사를 늘어놓는일은 자제하려 한다.
그러나 꼭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경제정책을 펴나가되 경제원리에 맞지 않는 정책은 있어서도 안되고 성공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이제까지 정부가 추진해 온 부동산투기억제나 증시부양 등 각종 정책이 실패한 근본원인은 경제원리를 무시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기능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해 주고 경제의 흐름에 막힌 곳이 있으면 그 매듭을 풀어주는 데 있는 것이지 정부가 모든 문제에 개입하여 행정력으로 방향을 좌우하려 하는 것은 경쟁원리와 시장기능,기업자유를 축으로 하는 자유경제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자원배분을 왜곡시키고 도처에 무리를 낳음으로써 일을 오히려 그르치게 된다는 것을 과거의 경험은 말해 주고 있다.
제도개혁도 경제원리를 살리는 전제 아래 실효성있게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안정론과 성장론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새 경제팀이 성장론의 바탕 위에서 경제정책을 펴나갈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인 듯 한데 성장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안정을 외면해서는 안되듯이 경제원리의 바탕 위에서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새 경제각료들은 마음에 새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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