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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힘자랑」에 할 일 못했다/거여소야 첫 국회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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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각차 커 파란ㆍ변칙정국 재현/입법 소홀ㆍ거여 독주등도 문제
16일 끝나는 1백48회 임시국회는 3당통합후 거여소야 정국의 실험무대로선 실망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김재순국회의장의 개회사 파동으로 시작한 이번 국회는 국방위의 군조직법 날치기 통과,막판 지자제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공방과 평민당의 철야농성등 파란과 변칙의 연속이었다.
이번 국회의 출발이 3당통합에 대한 당위성 논쟁이었지만 「정국안정의 토대」(민자) 또는 「정국위기의 확산」(평민)이라는 극단적 시각은 각 상임위에서 감정싸움의 양상으로 번졌다.
실질적 성과로 나타날 수 있는 각종 입법안들은 실종돼 버렸다. 보안법ㆍ안기부법 등 개혁입법 정리,광주관련법 등 5공청산 마무리,지자제법등 이번 국회를 소집한 가장 중요한 이유들이었던 안건들은 하나도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민생치안 부재ㆍ전세값 폭등ㆍ물가불안 등 긴급한 민생대책문제는 현안들에 떼밀려 뒷전에서 논의되는둥 마는둥 해 국회에 대한 불신감만 두드러지게 됐다.
이번 임시국회는 당초의 두가지 관심사인 거여 정치질서가 정치안정의 대체모델이 될 수 있느냐의 여부와 12ㆍ15청와대 대타협의 후속조치를 마무리하느냐의 문제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또 본회의ㆍ상임위에서 민자당의원들은 국회를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불참률이 높았고 성의있는 자료준비가 없었으며 여기에 편승하듯 정부측의 답변은 고압적이고 알맹이가 없었다. 평민당은 지엽적인 방해전술로 일관했을 뿐 대안을 내놓는 정책정당의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국회의 새로운 풍속도로 이런 것들이 자리잡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과거 여소야대때의 상습적인 정국긴장과 인기위주의 과당경쟁은 사라졌지만 정치적 이완과 거여의 일방적 독주가 그 자리를 대신해 또다른 만성적인 거여 국회의 문제점으로 계속 노출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지방의회선거가 정치권의 당초 약속인 6월말 실시시한을 넘긴 것은 큰 실망감을 던져주었다.
지자제선거법의 통과 실패는 민자당과 평민당의 공동책임이다.
평민당은 내심 연기를 바라며 민자당의 강경자세를 역활용,정치공세에 치중했다는 인상을 주었으며,민자당측은 처음부터 지자제연기를 위한 단계적 명분축적을 해 나간 인상이 짙다.
정당후보추천 배제는 물론 국회의원의 지원연설 금지까지 규정한 민자당 안은 어떻든 과거 4당결정을 번복했고,야당으로선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것으로 협상용의 셩격을 넘는 것이었다.
지자제를 관철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쪽으론 강행처리 안한다는 암시를 흘린 것도 당초부터 연기시키려는 의도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이에따라 지방선거는 현재로선 하반기로 늦춰질 수밖에 없으나 정기국회ㆍ국정감사 등 여러가지 일정을 감안하면 지자제선거를 실시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민자당측이 법안통과를 늦추는 대신 시기를 7,8월로 못박자는 평민당측의 제안에 응하지 않는 점으로 미뤄 내년으로 연기될 것이라는 게 유력한 관측이며 지방의원과 단체장의 동시 선거실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자ㆍ평민 두 당이 지자제선거를 절실하게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게 지자제 보류의 가장 큰 이유다.
특히 민자당측은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할 경우 2조원이상의 돈이 시중에 풀려 침체국면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경제계쪽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이것은 민자당이 수라장속에서도 종합토지세 세율을 인하한 지방세법 개정안을 기어이 통과시킨 것과 같아 보수합당의 성과가 드러난 셈이다.
아무튼 지자제는 5공때 87년 상반기 실시약속 취소이래 세번째 무산으로 지난 2년간 지자세실시 공방을 벌였던 우리 정치의 허상을 나타낸 대목이기도 하다.
보수연합의 속성은 개혁입법의 처리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보안법ㆍ안기부법은 겨우 회기말에 안을 내놓은 상태이고 경찰중립화법은 아예 제출되지도 않았다. 민자당의 한 군출신위원장이 국군조직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도 민자당의 성향과 내부의 균열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또다른 쟁점인 광주관련법은 평민당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예상대로 강행처리를 안했지만 5공 청산문제의 깨끗한 수습은 뒤로 미루게 되었다.
민자당으로서는 이번 국회에서 3당통합으로 인한 「다수의 횡포」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여려 대목에서 노력했다.
물론 민자당이 지방선거법등에서 할 생각이 없었고 개혁입법에 대해서는 내부이견조차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방강행처리를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다.
평민당측은 국회의 파행운영과 무소득을 장외투쟁의 명분으로 이용할 생각이어서 당분간 정국엔 난기류가 돌 것으로 보인다.
평민당으로선 이번 국회를 계기로 수적 열세를 뛰어넘어 1대1 정국대결 구도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민자당의 무반응 전략내지 독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따라 이미 예정된 다음 단계 투쟁인 1천만 서명운동ㆍ시국강연회에 돌입할 것으로 보이며 「국회의 파산과 무기력」을 적극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
3당통합후의 첫 국회는 민자당이나 평민당 어느 쪽에도 정치적 점수를 얻지 못하고 정국냉각이란 후유증만 남기게 됐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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