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개혁 속도 더뎌 소 젊은이들 불만"|공산당 청년 동맹 국제국 부부장 판체힌씨 일문일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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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소련의 심장부인 크렘린이 자리잡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인 보그단 흐멜니츠키가에는 소련 3천3백만 공산당 청년 동맹 (콤소몰) 중앙위가 자리잡고 있다.
비교적 좁고 어두운 기분의 흐엘니츠키가의 한길 옆 줄지어선 건물들 가운데 콤소몰 중앙위 건물이 쉽게 남의 눈에띄지 않는 작은 간판을 걸고 자리잡고 있다.
2중으로 된 문을 두번 열고 들어가면 창고를 연상할 만큼 어두운 좁은 계단이 나타나고 낡아 보이는 난간을 따라 3층에 오르면 콤소몰 중앙위 간부들의 사무실이 긴 복도 옆에 줄지어 자리잡고 있다.
이들 간부들의 집무실 가운데 타바리시치(동지) 세르게이 판체힌이라는 명패가 붙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키1백75cm에 늘씬한 모습의 30대 청년 판체힌「동지」가 취재진을 맞았다.
판체힌씨는 콤소몰의 국제국담당 부부장으로 주로 대외담당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파란 눈이 뒤에서 형광등을 켜놓은 듯 형형하게 빛나는 판체힌씨는 소련 젊은이들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 매우 빠른 러시아말로 대답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소련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한국 언론인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판체힌씨는 콤소몰 간부가 한국 언론인을 만나는 것은 역시 소련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페레스트로이카(개혁) 때문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가 콤소몰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하고 이같은 변화는소련사회의 「나선형 발전」의 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련의 개혁은 후세에 평가가 나오겠지만 민주화는 소련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판체힌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콤소몰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소련사회는 공산당이 모든 것을 지도해 온 것이 사실이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당이 주도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콤소몰도 변혁을 맞고 있다.
소련 국민들은 지금까지 위로부터 지령을 받아 행동해왔다. 콤소몰의 경우도 전에는 맹원이 되면 단일 강령에 따라 모든 행동·철학이 단순화된 단일 지도를 받아왔다. 맹원들은 물론 이를 따랐다.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는 지지외에 다른 길이 없어 위로부터의 지시를 추종해왔다.
그러나 이젠 전에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질문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요즘은 젊은이들인 우리 맹원들 사이에서 과거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다.
특히 콤소몰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은 심지어 지도부간부들을 「교조주의자」또는 「권위주의자」로 비난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는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글라스노스트 덕분이기도 하다. 청년들의 의사표현의 자유화가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콤소몰의 역할은 무엇인가.
『콤소몰은 1918년 창설돼 현재 14∼28세의 소련 청년 3천3백만명이 맹원으로 가입해 있는 단체다.
콤소몰의 창설 당시 목적은 청년들의 공산주의 정신교육이었다. 이데올로기·문화·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해 종합적인 청년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는 공산당의 보조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콤소몰은 이제 모든 지도를 민주화 원칙에 따라 실시하고 있다.
지령의 방법이 아닌 토론과 토의를 거쳐 설득으로 납득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다.
최근 맹원들의 콤소몰 중앙위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어 지도간부들도 새로운 의견을 내놓고 이를 토의하고 있다.
즉 밑으로부터의 소리를 듣고 맥동하는 실생활을 자세히 보고 들은뒤 맹원들을 지도하자는 방안들이 그것이다.
소련에는 현재 콤소몰 외에 7만여개의 다른 청년 단체들이 있다.
이들 단체들은 각 공화국, 민족적 정신에 바탕해 창조적인 청년들이 결성한 것이며 또한종교적 단체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콤소몰 내에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반대는 없는가.
『개혁이라는 큰 방향이 당과 콤소몰 지도부에 의해 결정됐음에도 이같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반개혁보수파들 보다는 현재의 개혁이 너무 속도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이 더 거센 상황이다.
콤소몰이 젊은 맹원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속한 조직 개편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
소련에는 현재 15개 공화국에 각각 콤소몰 자치기구가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독립된 콤소몰 기구가 구성돼 있지 않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러시아내 독립 콤소몰 기구를 만들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국 대학생 연맹 지도자 1천여명이 모여 이에 관한 토론을 가겼었다.』
-지난해 소련 각지에서 있었던 시위와 파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콤소몰 맹원들이 콤소몰 이름으로 시위하거나 파업한 적은 없다. 그러나 맹원들 대부분이 탄광 노조 등 각 직맹노조에 가입하고 있기 때문에 맹원들도 그같은 시위·파업에 참가했다.
최근의 소련내 파업을 두고 서방측에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파업의 이유와 동기를 파악하고 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토론과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통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돼야 할 것이다.』
-오늘날 소련의 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페레스트로이카는 혁명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혁명적 성격으로 인해 소련 국민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인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소련이 이같은 「혁명의 파고」 어느 지점에 놓여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후세에 현재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평가는 따로 있을 것이다.
다만 소련사회는 점진적 진전방식인 나선형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나선형 발전경로는 옛날위치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어느정도 앞으로 진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경제개혁은 그 과정이 복잡하고 고통이 많이 따르고 있다. 개혁과정의 복잡성은 소련이 새 경제체제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시 새로운 경험을 쌓아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부경험보다 소련 스스로의 경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폴란드 등 동구 개혁에 대한 견해는.
『폴란드 등 동구 형제 국가들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와 소련과는 비교할수 없다.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다르고 변혁의 목적과 과정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산주의 국가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너무 단순화해서 적용했다. 이것은 소련과 동구 각국들이 겪었던 부정적 요소들이었다. 스탈린 통치시절 각국은 스탈린의 요구대로 한가지 방향에 맞추어 살아왔다. 이제는 각국이 역사적 배경에 따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젠 도그마적 공산주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한국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의 심심한 인사를 전한다. 나는 한국의 발전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 남북한이 모든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글 김동수 논설위원 진창욱 기자 사진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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