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높이려다 은행신용 “먹칠”/신용카드 발급비리의 실태(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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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내주는 대가로 카메라등 강매 일쑤/“은행측 상부로부터 목표달성 압력”
은행신용카드 무더기 부정발급사건은 신용사회의 보루인 은행이 가입실적을 높이기 위해 악덕발급대행업체와 검은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6백여건에 불과하지만 은행간의 과당경쟁이라는 구조적 부조리를 감안한다면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검찰의 추정.
더구나 카드부정발급은 연체금액누적으로 이어지고 은행측은 이를 자체손실로 처리하면서 수수료율을 인상,결과적으로 선량한 가입회원에게 부담을 전가했다.
또 이사건은 건전소비를 주도해야할 은행이 결과적으로 무자격 카드회원을 양산,과소비를 부추겼다는 비난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 2개 은행지점이 4개 악덕발급대행업체와 결탁,부정발급한 6백여건 가운데 1백24건에서 1억2천만원의 미결제액과 6천3백여만원의 연체액이 발생했다.
이번에 관련된 상업ㆍ제일은행의 89년말 은행신용카드 연체액은 1백45억원,2백9억원이며 89년말 대손처리액은 1억1천3백만원 2억2천여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2개은행을 비롯,조흥ㆍ한일ㆍ신탁ㆍ국민ㆍ외환 등 7개은행의 89년말 은행신용카드 연체액은 1천9백23억여원,89년 대손처리액은 1백2억여원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검찰수사가 확대됨에 따라 부정발급에 따른 연체ㆍ대손처리금액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직원비리=이번에 적발된 간부ㆍ행원들은 카드발급때 신청인본인여부,은행신용도조사,연대보증인의 사실여부,재정확인 등 실질적인 기초조사를 하지않은 채 무자격자들에게 신용카드를 대량발급했다.
이 과정에서 차장은 매달 30만∼70만원씩,대리ㆍ주임은 1건에 3만원꼴로 1,2차례에 걸쳐 20만∼30만원씩 정기적으로 상납받았다.
◇대행업체 비리=구속된 동아개발연구원 대표 김학경씨(29)는 일간지에 발급대행광고를 낸뒤 이를 보고 찾아온 27명의 의뢰인들을 이 회사직원으로 허위기재하고 연대보증서를 위조,제일은행 안양지점을 통해 카드를 발급받았다.
김씨는 의뢰인들에게 발급조건으로 카메라ㆍ정수기 등을 시중가보다 2∼3배 비싼 가격으로 강매했다.
또 이들 몰래 가맹점으로부터 물품을 구입한 것처럼 매출전표를 위조,카드할인업체로부터 수수료를 공제하고 할인받는 등의 수법을 사용,2천여만원의 폭리를 취한 뒤 사무실을 이전하기도 했다.
대행업체 영업사원들은 은행으로부터 카드가 발급된 뒤 본인에게 교부하기전에 사용하거나 허위로 도난ㆍ분실신고를 내고 가맹점에 사용불능통보가 가는데 2∼3일의 기간이 걸리는 점을 악용해 카드를 사용,의뢰인들에게 수백만원씩의 손해를 끼쳤다.
◇문제점=은행의 카드발급 실무담당자들은 은행측이 과다하게 책정한 목표액을 달성하기 위해 뻔히 연체가 예상되는 무자격자들에게 부정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구속된 상업은행 남현동지점 강남희차장(48)은 검찰조사과정에서 『상부로부터 목표달성 압력을 계속 받아왔다』고 진술했다.
이같은 풍토속에서 허점을 발견한 악덕대행업체들은 은행간부ㆍ직원과 쉽게 결탁할 수 있었고 카드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는 발급 의뢰인들이 피해를 보았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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