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익 『이제는』 정호승 『두만강에서』 황동규 『몰운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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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망의 봄이 오고 있다. 80년대적인 것을 청산하고 어떻게 90년대적 상황변화에 적응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이수익은 「이제는」(『문학동아』 봄호)에서 밀물의 시간이 싫다고 말하고 있다.
「갯벌에 드러난 추한 상처들/다 내 것이고/휑하게 뚫린 전망의 공간 또한/내 것이니,/나를 이 음습한 바닷가에 그냥 있게/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한다. 이제는 썰물이 좋다고 한다. 숨가쁜 아우성으로 가득 찬 밀물의 시간이 싫다는 것이다.
피의 부름으로 통칭되는 80년대 광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리라. 물론 여기에는 역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시의 문장 그대로 읽어도 절실함은 여전하다. 추한 상처들과 휑하게 뚫린 절망의 공간에 함께 있고 싶다는 화자의 진술은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살았던 화자로서는 오히려 추한 것, 절망스러운 것에서 더 진실한 것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정호승의 「두만강에서」(시 세계의 문학』봄호)는 사실적인 필치로 두만강가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강요나 과장된 감정이 시의 문면에 제시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나는 강 건너 북한 땅을 눈물 없이 바라보았다」고 진술함으로써 눈물을 앞 세우는 감상벽을 넘어서고 있다.
그는 눈물 없는 눈으로, 그러니까 오히려 더 밝고 분명하게 그의 눈에 비치는 중조 국경지대 두만강가의 북한 땅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두만강은 분단이후 지난 반세기동안 현실적으로는 흐르지 않고,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다만 우리의 가슴속으로만 흘러가고 건너갈 수 있는 강이었던 것이다.
이 두만강이야말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수많은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 더 절실히 우리에게 통일을 호소하는 상징물일 것이다. 그가 겨울비·안개 속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의 탑을 바라보고 눈내린 산기슭에서 속도전이란 글자를 희미하게나마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남북분단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풍문에만 들려오거나 지나친 급진론에 기울어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시각이거나 아니면 무조건 눈물로 해결하려는 관점을 넘어서서 이제 눈물없는 눈으로 분단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녘땅 마을에 아침 연기가 피어오르고 도문교 위로 리어카를 끌고 한 사내가 북한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길은 시적 효과를 한층 높인다. 그 평범한 일상사를 통해 화자는 남북문제의 핵심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황동규의 「몰운대행」(『문학사상』 2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 작품은 무덥고 지리한 여름날 관광객을 피해 도상에만 나타나는 폐광시대의「몰운대」를 찾아간 화자의 체험을 쓴기행시다. 그는 도시의 소음과 문명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험난한 산길을 헤쳐 도달한 몰운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화자는 무한한 정신의 해방감을 맛본다.
그러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몰운대 절벽에 앉아서도 아름다움 그 자체에 탐닉되지 않고 깨어 있는 의식을 통해 그는 구도자의 높은 정신적 경지를 추구하는 진지한 자기 탐구를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이수익의 겸허함과 정호승의 맑은 눈과 황동규의 깨어 있는 정신과 함께 대망의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동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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