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진밭골 그림편지] 생명의 비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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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기층문화라 하면 유행 따라 변하는 문화가 아니고 기초가 되는 문화겠지요. 큰 강 아랫물처럼 깊이와 물살을 헤아릴 수 없는 심층문화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갈수록 가볍고 빨라져서 기층문화는 더욱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산골까지 근대화 바람이 불며 마을 노인들조차 전설과 신화에 흥미를 잃고 자신이 부르던 노래마저 버렸습니다.

굿하면 무당 재수굿만 연상하게 되었지요. 굿은 본래 놀이.신앙.예술.노동.모임 등 민속문화를 포괄합니다. 장독 앞 어머니의 비나리는 온생명적 우주 신앙은 아니었을까요. 뭍생명에 헤아림 없는 비원이었습니다. 깊고 광활한 굿 문화는 이제 자취 없고, 그 빈 자리는 불교를 만나도 다 채울 수 없고, 유교의 인간사회 중심관으로도 보이지 않고, 자본주의의 표면적 물질 세계로만은 더더욱 잡히지 않는 잊혀진 세계가 되었습니다. 편협한 오리엔탈리즘이 합리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의식계를 사로잡은 건 아닌지요.

김봉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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