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개혁드라마(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5일 개막된 소련의 당중앙위 전체회의는 지난 4년간 정력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을 추진해온 고르바초프 당서기장의 정치적 장래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전기가 되고 있다.
물론 리가초프정치국원 등 아직도 소련 지도부에 대거 포진하고 있는 강경 보수파들과의 타협 또는 투쟁과정이 뒤따르겠지만 고르바초프의 개혁 지지기반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더욱 굳어지고 있다.
그는 개막연설에서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 포기,다당제 수용,시장경제 도입 등 가위 혁명적인 제안을 내놓았으며 「소련 공산당은 변화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도 과거 70년 넘게 유지해왔던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포기한 것은 「제2의 볼셰비키혁명」으로 불릴만큼 엄청난 변혁이며 앞으로 이같은 소련의 당내 페레스트로이카가 탈냉전의 새 국제질서에도 보다 확실한 전망을 열어줄 것으로 보고 이를 평가하고자 한다.
사실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 이래 소련의 당료조직은 줄기차게 일당독재를 해오면서 온갖 특혜를 독점해 왔으며 이같은 체제를 무리하게 계속 유지해온 결과 소련의 정치ㆍ경제는 동맥경화증을 일으켜 오늘의 난국을 맞게된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작년에 인민대표회의를 구성하고 최고회의 의장이 된 데 이어 이번엔 보수파들이 남아있는 정치국의 폐지와 중앙위의 축소 등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선 당기구의 축소와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결과인 것 같다.
또 정치집행위를 신설해서 소수민족대표를 참여시키려는 계획은 자주노선을 요구하고 있는 제민족세력의 정치참여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연방제를 겨냥한 포석으로 보인다.
동구의 눈부신 개혁물결과 소련내 지역 공화국들의 독자노선의 분출도 소련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리투아니아ㆍ라트비아ㆍ그루지야공화국들은 이미 공산당 일당독재의 종말을 선언했고,다당제를 수용했으며,아이로니컬하게도 바르샤바동맹 7개국중 종주국 소련을 제외한 나머지 6개국이 이미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포기했던 것이다.
이제 그러한 정치개혁 조치가 소련으로 역류해서 소련 정치사는 바야흐로 세기적인 개혁드라마를 펼치려 하고 있다.
급속한 개혁에 제동을 걸려는 보수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30만 모스크바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면서 『루마니아를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제 고르바초프에 주어진 최대 과제는 어떤 방법으로 보수ㆍ개혁파간의 갈등을 절충시켜 한편으로는 소련제국 판도의 분열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페레스트로이카에 결집된 추진력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이 과정이 슬기롭게 극복된다면 서방측이 우려했던 고르바초프의 정치생명은 보장될 것이며 국제정치분야에서 탈냉전ㆍ평화공존의 기류는 안정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미묘한 시기에 그동안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유보해온 북한의 로동신문이 「소련의 개혁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논평한 것에도 우리는 주목하고자 한다.
소극적이나마 이같은 북한측의 반응이 단순한 대외용인지 아니면 자체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한 데서 나온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다. 어느 경우든 우리는 차제에 북한의 개방ㆍ개혁이 빠를수록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주시하고자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