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우리'끼리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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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그룹 윤병철 회장과 임원들의 사무실은 서울 회현동 본사 23층에 있다. 자회사인 우리은행의 이덕훈 행장의 사무실은 한 층 아래인 22층이다. 그러나 尹회장과 李행장은 한 달에 한두 번 이사회나 경영협의 때가 아니면 거의 만나지 않는다.

출발부터 바람 잘 날 없었던 우리금융그룹이 요즘 또 시끄럽다.

우리금융은 얼마 전 우리은행에 대해 순이익을 축소 계상하고 그룹의 우리카드 정상화 방침과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면서 李행장에게 엄중 주의를 주고 부행장 2명에게는 중징계를 요구했다. 우리은행은 "회계를 보수적으로 처리한 것일 뿐"이라며 "정부 당국에 유권해석을 요구하겠다"고 발끈했다. 우리금융도 "할테면 해보라"며 배짱이다.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맞붙어 제3자의 처분만 바라는 형국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양측의 갈등은 현재의 지배구조를 한꺼풀만 벗겨보면 언젠가 터지고야 말 일이었다. 우리금융은 부실 금융회사를 정리하기 위해 정부가 만들어낸 국내 최초 금융지주회사다. 그러나 지주회사는 은행장을 선임할 권한조차 없이 그룹의 전략만 맡도록 돼 있다.

우리금융 입장에선 우리은행의 협조가 절실하다. 우리은행이 그룹의 부실 부문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면 은행 실적이 나빠진다며 그룹 측 요청에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겉모습만 지주회사일 뿐 지주회사로서의 장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금융에는 8조6천억원의 공적 자금이 들어갔다. 이 회사의 내부 갈등으로 인한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간다.

김창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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