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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모양 44년 '국민 볼펜' 모나미 1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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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뭔가를 적어야 할 때 별 생각없이 찾는 필기구가 있다. 흰색 자루에 검은색 머리 부분이 특징인 '모나미 153볼펜'이다.

1962년 5월 송삼석(78) 모나미 회장은 일본의 거래처 직원이 갖고 있는 볼펜을 보고 무릎을 쳤다. 송 회장은 그해 말 일본 오토볼펜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유성잉크를 만들었고 63년 5월 1일 첫 볼펜 제품을 선보였다. 모나미는 원래 61년 광신화학공업(모나미 전신)이 생산한 그림물감의 상표였지만 물감과 볼펜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67년 회사 이름이 됐다. 하필 '153'이 볼펜이름이 됐을까.사연이 있다. 제작 연도나 날짜를 따서 '모나미1963'이나 '모나미501'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한 직원이 '153'을 제안했다. '별 뜻 없이 1+5+3이면 화투놀이에서 제일 높은 9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직원들은 핀잔을 줬다.하지만 송 회장은 '베드로가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성경 구절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그는 2003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153이란 숫자는 나에게 '순리에 따라 얻어진 것은 뒤탈이 없다'는 상도(商道)를 일깨워줬다"고 회고했다. 153볼펜의 성능은 그동안 많이 개선됐지만 겉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초기엔 머리와 자루를 단순히 끼우는 형태였지만 68년 지금처럼 나사 형태로 돌려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뀐 게 전부다. 물론 변신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주머니에 꽂도록 클립을 달거나 잡는 부분에 고무를 단 제품이 나왔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153볼펜은 지금도 모나미 볼펜 중 가장 많이 팔린다. 송 회장의 장남으로 93년 경영을 승계한 송하경(47) 사장은 "당장 디자인을 바꿀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153볼펜은 중국.필리핀 등 6개 나라로 수출되고 있다. 60년대 15원에 팔리던 볼펜 한 자루 값이 지금은 200원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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