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원 죽음 방관하는 행정(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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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억울한 죽음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억울한 죽음이 발생되고 있음에도 이를 방치하고 손을 쓰지 않았다면 정부를 원망하고 행정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또 40대 청소원이 빙판 내리막길에서 굴러 숨졌다. 아버지의 힘든 작업을 돕기 위해 나선 아들이 지켜보는 바로 앞에서 아버지는 숨졌다. 남편을 돕기 위해 나선 아내가 쓰레기 수레에 깔려 죽었는가 하면 아내가 잡아주는 수레의 가속에 밀려 남편이 숨지기도 했다.
지난 한햇동안 작업중의 「환경미화원」 17명이 이렇게 숨졌고 2백13명이 부상당했다. 서울의 새벽을 열며 1천만 시민의 쓰레기를 치워주는 이들이 손수레 밑에 깔려 죽어간다면 이 사회가 건전한 사회일 수 있겠는가.
지난해 말,서울시가 마련한 청소원 안전사고 대책에 따르면 쓰레기 수거체제를 인력 중심에서 차량 중심체제로 전환한다고 했고 차량진입이 불가능한 지역엔 2인1조로 손수레를 몰고 쓰레기 적재량도 1t을 넘지 못하게 규정했다.
그러나 실시 한달이 채 안된 지금 똑같은 사고로 또 억울한 죽음이 발생했다. 적재량은 규정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2인1조의 규정도 적용되지 않았으며 언제나 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손수레의 제어장치도 원시적 방법 그대로였다.
고지대와 골목길은 청소원의 수거작업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형편이긴 하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기술산업화 시대 속에서 청소원 안전사고의 주범인 손수레의 제어장치는 어째서 옛날 그대로 방치되어야만 하는지,행정의 무신경이 잔인하게 비쳐진다.
서울시 청소노조 조합원 8천8백여명,이중 대부분이 40대 이후의 중년층이다. 신체조건상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고된 일을 혼자서 감내하기가 어렵다. 고지대 골목길의 경사로에서 작업할 때 반드시 2인1조 이상의 공동작업이 실시될 만큼 인력을 배정해야만 하고 특히 겨울 빙판 경사로를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손수레 제어장치가 개발되어야 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하찮은 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 「하찮은 일」로 해서 아까운 인명이 거듭 희생된다면 그 희생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되어야 했었고 실용화되어야만 했었다.
서울의 가장 밑바닥을 말없이 쓸고 닦으며 살아가는 청소원의 귀중한 마음씨와 손길을 고맙게 여긴다면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보잘것 없는 작은 일에도 열과 성의를 보이며 말없이 일하는 이들에게 빛을 안겨주는 행정이야말로 건강한 시민사회를 이룩하는 밑거름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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