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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들의 국제화 갈 길 멀다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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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지난주 뉴스위크 한국판의 '세계의 100대 글로벌 대학'을 접한 국내 대학가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국내 대학중 단 한곳도 100위권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IT,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를 리더하는 기술강국이다. 어떤 분야인들 한국이 100위권에 들지 못할 분야가 있었던가? 그런데 글로벌 대학 100위권에 한국은 없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순위를 단호하게 반박한 대학이나 교수도 별로 없다. 대학 당국이나 교수들은 그럴 개연성을 어렴풋이 나마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짚어야할 학계의 문제점들이 뉴스위크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는 기류도 대학가에 흐른다. 한국의 교육 여건과 역량에 비춰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라고 고려대 이두희 대외협력처장은 말했다. 서울대 정진호 교수(약대)는 "교수사회에 굉장한 자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뉴스위크 한국판은 '세계의 100대 글로벌 대학' 후속으로 국내 주요 대학들의 반응과 대책을 전한다. 또 국제화된 대학들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경향과 신흥 명문 대학의 판도도 더불어 소개한다.

이번 순위 보도로 가장 당혹스러운 곳은 국립 서울대다. "서울대 마저"라는 실망감과 "넌 뭐했지"라는 책망이 안팎에서 맞물려 분위기가 무겁다. 서울대의 국제 위상 제고와 최상위권 대학 도약을 공약으로 내건 신임총장 취임 직후여서 뒷맛이 더 씁쓸하다. 지난 8월 1일 취임한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대학순위 평가에서 서울대가 낮은 점수를 받는 이유를 묻고 현황 파악을 지시했다. 서울대가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규모와 내실에 걸맞는 순위를 확보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에 서울대 기획실에서는 외국의 대학평가기관별 평가 기준과 자료를 취합중이다.

서울대는 기획부실장 남익현 교수(경영학과)를 통해 순위 보도에 대한 서울대의 입장을 전해왔다. (참고로 글로벌 대학 평가항목은 ▲분야별로 자주 논문이 인용되는 연구자 수 ▲최근 5년간 네이처,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 수 ▲사회과학 논문인용지수인 SSCI와 예술 및 인문과학논문인용지수인 A&HCI 등에 실린 논문 수 ▲국제 교수진 비율 ▲국제 학생 비율 ▲교수/학생 비율 ▲보유도서 규모 등이다.)

남 교수는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며, 대학평가에서 드러난 취약점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이런 결과가 나타난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서울대는 논문 게재와 인용과 같은 연구 실적에서는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인적구성(외국인 교수.학생) 항목의 배점이 높은 평가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외국의 주요 대학에 견주어 서울대는 외국인 교수나 학생의 수가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영국 일간지 '더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200대 대학 순위에서 서울대는 93위에 올랐다. 이 평가에서는 외국인 교수.학생 항목의 배점이 각각 5%, 총 10%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다. 하지만 뉴스위크한국판에서는 외국인 교수.학생 비율이 각각 10%로 총 20%의 비중을 차지했다. 순위를 매기는 기준에 따라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인적인 글로벌 지수를 높이는 방법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서울대 유학을 원하는 중국과 동남아 학생들은 넘쳐난다. 입학을 원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무제한 수용하면 된다. 하지만 자질을 불문하고 지망생들을 다 받아들여서는 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남교수는 지적했다.

외국인 교수도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2005년 서울대 전체 교원 4116명중 외국인 교원은 56명에 불과했다. 남 교수는 "해외 겸임 교수제를 활용해 외국인 비중을 높이는 길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서울대 자체 역량을 키워 외국의 교수들이 찾아오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이와는 별개로 외국인 교수 초빙은 예산과 직결된다. 현재 서울대에 지원되는 예산으로는 외국인 교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

보유 도서 항목에서도 불리했다. 배점 비중이 10%인 도서관 장서의 절대 규모는 서울대가 밀리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대 예산의 십배이상을 지원받는 외국 대학들과 단순 비교하는 것부터가 무리라는 항변이다. 세계 1위라는 하버드 대학교의 기부금은 23조원인데 반해 서울대는 2300억원이다. 남교수는 "예산 대비 장서량을 따지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논리로 교수 1인당 연구성과도 연구비 지원 규모에 대입하면 서울대가 월등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2004년 과학기술논문색인(SCI) 순위평가에서 31위를 차지했다. 결국 정책당국의 예산 지원이 문제 해결의 필요조건인 셈이다. 저조한 국제화 지수의 책임은 대학과 사회 전반이 나눠 가져야 할 몫이다. 남 교수는 글로벌 지수가 대학의 경쟁력과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진 않는다고 했다. 뉴스위크 한국판 순위는 국제화의 척도일뿐 대학의 경쟁력과 질을 100%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국제화 지수를 절대 기준으로 보지말고 가이드라인쯤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고 남 교수는 당부했다.

하지만 외국의 평가기관들이 그런 사정을 봐가며 순위를 매길 만큼 친절하지 않다. 글로벌 스탠다드만 적용한다. 철저한 절대 평가구조다. 그에 따른 결과는 국제사회에서 준거로 통용된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번 순위 매김을 비교적 담담하게 수긍하는 분위기다. 뉴스위크한국판 보도가 오랜기간 묵혀왔던 대학 교육과 행정의 곪은 종기들을 터뜨리는 계기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백순근 교육학과 교수는 "논문이라든지 학문적 성과는 발전했지만 글로벌 지수는 세계수준에 못 미친 결과"라고 해석했다.

국내 대학들이 글로벌화되려면 교수사회부터 인종 전시장과 같은 다양한 국적 소유자들로 구성돼야 한다고 백 교수는 강조했다. 그러자면 기본 토양으로 영어강의가 확대되야 한다. 외국인 학생들도 지금과 같은 언어환경에서는 제대로 공부하기어렵다. 서울대 조차 영어 강의가 활성화되지않아 외국인 교수,학생 유치에 제약이 많다는 게 백 교수의 진단이다. 지난해 국내 대학 학사과정 영어전용강좌는 전체 강좌의 1.6%에 지나지않았다. 석.박사 과정도 5.1%에 불과하다.

국제화의 현주소를 피부로 느낀 케이스도 있다. 서울대 불문과는 지난 2002년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쟝 벨맹-노엘(Jean Bellemin-Noel)씨를 1년간 초빙했다. 노엘씨는 파리 8대학을 포함해 30년이상을 연구에 전념한 프랑스 학계의 거목이다. 통상 대학에서 외국인 교수를 초빙할때는 통상 가족을 동반토록한다. 서울대 불문과는 부족한 예산탓에 노엘씨 본인만 초빙했다. 서울대의 열악한 재정형편을 전해들은 노엘씨는 경비문제라면 자신이 불편을 감수하겠다며 흔쾌히 응했다. 1년에 몇차례 프랑스의 부인이 남편을 찾아 한국을 방문했다. 이같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비롯된 인적 교류는 1년으로 막을 내렸다. 외국인 석학 초빙 옵션을 다른 학과로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장재성 불문과 교수는 "눈앞에 온 아주 드문 기회를 재정때문에 놓쳤다"고 혀를 찼다. 그때 장 교수는 엄청난 투자가 아니면 유명 석학 유치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대학의 국제화는 재정 지원이 관건인 셈이다. 그는 "국내 대학이 100위권에 못들었다고 실망만할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이 합당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때"라고 했다.

이번 순위 결과에 특히 면목이 서지 않는 곳이 문과계통이다. 서울대 이공계는 미국 상위권 대학과의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다. 서울대 연구처는 지난해 수리과학, 물리, 생명과학, 화학공학,기계항공, 약학 등 이공계 6개 분야 교수 1인당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논문수와 피인용 횟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 학과의 연구수준이 미국 이공계 대학원 20위권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서울대 공대는 최근 외국 석학들로부터 기계, 재료, 화공, 전기 관련 학과가 세계 10위권 ̄20위권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서울대가 세계 100대 글로벌 대학에서 탈락했다. 그렇다면 자연 인문.사회 계통의 학과의 부진이 전체 순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인문.사회 과학분야는 영어로 논문을 쓰는 빈도가 이공계보다 적다는게 학계 일반의 시각이다. 그만큼 국제 학술지에 실릴 가능성이 적어 평균을 까먹은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을 법 하다.

(* ②에 계속 - 28일(월)에 서비스됩니다)

박성현 뉴스위크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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