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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Life] '정주영四柱'는 食神生財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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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큰 부자들의 공통 사주
먼저 아낌없이 재물 쓴 뒤
스리쿠션으로 키워서 되받아

움켜쥔 재물은 결국 재앙 돼
상류층이 솔선수범
'노블레스 오블리주' 되새길 만

술사의 이상적인 모델은 '초한지'의 장량이다. 장량은 '삼국지'의 제갈공명보다 한 단계 윗급의 인물이다. 공명이 특급 술사라면 장량은 초특급에 해당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공명은 삼국통일을 못 하고 죽었지만, 장량은 유방을 도와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후대의 술사들이 장량을 흠모하는 또 한 가지 결정적 이유가 있다. '세간에서 한몫 챙긴 다음에 산으로 튀었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술사들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병법의 귀재 한신 같은 경우에는 어영부영 사바세계에 남아 있다가 결국 유방에게 죽임을 당했다. 공명은 지나친 과로로 인하여 50대 중반에 병을 얻어 중도하차해야만 하였다. 술사는 오래 살아야 진정한 술사다. 오래 살려면 산으로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빈손 쥐고 산으로 가면 고생이 심하다. 도연명은 42세때 빈손 쥐고 귀거래했다가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문제는 돈이다. 기본 품위는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이와 같은 역사적 진리를 간파한 필자는 몇년 전에 '나는 산으로 간다'라는 책을 쓴 바 있다. 청산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 범부의 염원에서였다. 하지만 책이 팔리지 않았다. 세간에서 아직 한몫을 챙기지 못한 탓에 지금도 아파트 7층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는 신세다.

재물!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물론 밥 먹고 사는 정도의 재물은 노력하면 가능하다. 큰 부자는 노력 이외에 플러스 알파가 작용해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부귀총재천'(富貴總在天.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이라고 결론 내렸다. 주님의 섭리에 달려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섭리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추적해 들어가서 '인수분해'한 것이 사주팔자다.

명리학의 견지에서 볼 때 재물이란 자기가 극하는 대상이다. 극한다는 것은 싸워 이겨서 집어삼킨다는 의미다. 재물이란 쟁취의 대상인 것이다. 오행의 상극원리로 이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목극토(木克土).토극수.수극화.화극금.금극목이다. 예를 들어 자기가 토에 해당한다면, 토극수이니까 수가 재물이 된다. 팔자에 토 기운이 강한 사람이 물장사를 하면 좋다는 이야기는 바로 이 상극원리에서 나온 말이다. 아무튼 재물을 얻기 위해서는 싸움을 해야 하고 힘을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돈은 곧 업(業)과 비례한다. 돈을 버는 일은 우주의 엔트로피, 즉 복잡한 업을 많이 발생시키는 일이다.

이와 반대로 싸움을 하지 않고 순리를 따라서 돈을 버는 팔자가 있다. '식신생재(食神生財)' 사주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식신'이란 베풀기 좋아하는 기질을 말한다. 식신생재란 내가 먼저 베풀어 놓으면 그것이 스리쿠션(?)으로 작용하여 다시 재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되돌아올 때는 몇 배의 이자가 보태져 돌아오게 마련이다. 큰 부자들의 사주에는 대체로 식신이 발견된다. 식신은 오행의 상생원리를 따른다. 목생화(木生火).화생토.토생금.금생수.수생목이다. 목은 화를 밀어주니까, 목에 대해서 화가 식신이다. 예를 들어 일간(日干.태어난 날의 천간)이 목에 해당하는 갑(甲)이라면 화에 해당하는 병(丙)이 식신이다. 일간이 금에 해당하는 경(庚)이라면 수에 해당하는 임(壬)이 식신이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식신이 다시 재물을 밀어준다는 점이다. 일간이 갑(목)이라면 식신은 병(화)이고 재물은 무(戊.토)가 된다. 갑과 무 사이는 목극토의 관계로서 상극의 관계지만, 반대로 병과 무 사이는 화생토의 관계로서 상생의 관계다. 그러므로 갑과 무의 중간에서 병이 양쪽의 싸움을 뜯어말리는 중매쟁이의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식신이 중매쟁이가 되므로, 치열하게 싸움을 하지 않고도 재물을 벌어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식신이 있어야만 큰 재물을 모을 수 있다. 베풀지 않으면 큰 재물은 들어오지 않는다는 교훈이 바로 식신생재의 법칙이다. 참고로 사주에 식신이 없는 사람은 밥값을 먼저 내지 않는다는 통계를 유념해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식신이 없는 사주를 '염전사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짜다는 말이다. 염전사주하고 오래 놀다 보면 피곤하다.

씀씀이가 크기로 유명했던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도 식신이 있는 사주다. 그의 생일은 1915년 10월 19일(음력) 신(申)시로 알려져 있다. 만세력을 보고 간지로 환산하면 을유(乙卯)년 정해(丁亥)월 경신(庚申)일 갑신(甲申)시다. 일간은 경(庚)이고, 경은 오행상 금에 속한다. 여기서 식신은 태어난 달인 정해월의 해(亥)가 해당한다. 해(亥)는 수다. 이 해(亥)는 다시 목을 생한다(水生木). 천간에 나와 있는 을(乙)과 갑(甲)은 재물로 본다. 식신인 해가 이 을과 갑을 지원하고 있는 형국이다. 鄭회장은 경금(庚金) 일간에 태어났으므로 금극목이다. 목이 모두 재물이 되고, 중간에서 식신인 해수(亥水)가 경금의 강력한 기운을 일단 빼내서, 목으로 밀어주는 형국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큰 부자들 사주의 공통점은 식신생재다. 풀지 않고는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법칙이다.

이를 개인적 차원에서 설명한다면 내가 먼저 밥값 내는 차원이지만,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해 적용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상류층의 솔선수범이 그것이다. 베풀지 않고 움켜쥐는 데만 골몰하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뒤끝이 좋지 못하다. 명리학에서는 그것을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고 풀이한다. 사주에 재물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몸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재다신약 사주는 재물의 무게에 눌려 병으로 골골하거나 단명하게 된다. 풀지 않고 자꾸만 가두어 놓기만 하는 재물은 결국 재앙으로 되돌아온다는 법칙을 상기시키고 있다. 베풀어야 돈이 된다는 '식신생재'의 원리는 현재의 한국사회에 절실하게 요청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이기도 하다.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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