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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승진 '대통령 처남' 직장에서는 동정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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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지주 상무 권기문 씨.(자료사진=중앙포토)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대통령의 친인척 문제는 골칫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필연적으로 돈 문제가 얽힐 수 밖에 없는 은행원 신분의 친인척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25일 아침 일부 조간 신문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처남 권기문씨 기사가 등장했습니다. 우리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권 씨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의 주장을 실은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우리은행 내부 정서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권 씨는 대통령 처남이라는 점을 과시하기 보다는 이례적이랄 정도로 조심스럽게 처신해왔다는 게 행내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능력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동정론까지도 있는 실정입니다.

야당 의원의 주장처럼 권 씨가 노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말 이후 4번의 자리 이동을 한 것은 맞습니다. 우리은행의 부산 범천동 지점장이었던 권씨는 노 대통령 취임 넉달여 만인 2003년 6월 부산.경남지역본부 기업담당 지점장으로, 2004년 4월엔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점의 조사역으로, 그로부터 1년8개월 후인 2005년 12월에는 주택금융사업단 부장이 됩니다. 그리고 7개월 후인 올 7월에는 부점장과 임원의 중간단계인 단장급 직책의 우리금융지주 사회공헌활동추진 사무국장으로 임명됐습니다.

하지만 4번의 이동이 모두 승진은 아닙니다. 지점장과 본점 부장은 같은 직급의 자리로 승진이라고 볼 수 없다는 얘깁니다. 물론 해외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것은 은행원들이 선호하는 일이기는 합니다. 부장급에서 단장으로 바로 승진한 것도 빠른 승진 케이스에 속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권 씨의 인사이동은 '특혜'라기 보다는 '고육책'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권 씨가 거친 해외영업점 조사역이나 사회공헌활동추진 사무국장 자리의 공통점은 현업 영업 부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변의 관심이 너무 커 한동안 해외에 나가 있어야 했고, 마찬가지 이유로 영업일선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도 됩니다. 주택금융사업단 부장 시절에도 현장 영업을 담당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로 역시 은행원이었던 이형택씨가 각종 잇권에 연루된 혐의로 홍역을 치뤘던 것을 생각하면 권 씨나 우리은행의 이런 결정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권 씨가 현장 영업 부서에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와 엮였겠느냐"며 "본인이 이런 점을 고려해 일부러 현업이 아닌 자리를 원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본점 부장과 단장 사이에 영업본부장이라는 자리가 있지만 그 자리는 현장의 영업을 지휘하는 부서라서 본인이나 은행 모두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며 "연수로 따지면 영업본부장 승진은 이미 지난해 됐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54년생인 권 씨는 동기들 가운데 지점장이 일찍 됐을 정도로 영업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합니다. 요즘처럼 현장 영업 경험이 중시되는 은행 분위기에서 자신의 영업력을 제대로 발휘해 보지 못하는 권 씨 나름의 안타까움도 적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처남'이라는 신분은 권 씨 본인 뿐 아니라 우리은행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권 씨의 이동 여부는 '알만한'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는 실정이고 국가정보원, 감사원, 재경부, 금감원 등 정부 기관들이 수시로 안부를 묻고 할 때도 이만저만 고역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권 씨에 대한 대우를 잘 해주면 '특혜'라고 비난 받고 '못해주면' 정부로부터 섭섭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겠냐"며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신분은 권 씨나 은행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측면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권 씨와 우리은행을 보면서, 부러울 것만 같은 '대통령의 처남'이라는 신분도 꼭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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