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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대표 연설문 전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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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장과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여러분!
지금은 중대한 시점입니다.

역사의 방향을 바꿀 만큼 참으로 엄중한 순간입니다. 오늘의 심각한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희망으로 빛날 수도 있고, 절망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상초유의 일입니다.

시정연설을 통해 솔직히 털어놓고 자성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국민이 새롭게 출발하자고 받아들일 만 했습니다. 여론을 귀담아 듣는 겸손함이 돋보였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먼저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국민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어떻습니까?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수를 넘는 제 1당입니다.
국회권력을 명실상부하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처음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을 때, 한나라당은 '연내에 국민투표를 실시해야한다'고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대통령이 재신임 의사를 밝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11일에는 "연내 국민투표 실시는 적절한 결정"이고 "대통령은 조속히 구체적 시기와 방식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12일에는 "국정표류를 막기 위해 빨리해야 한다"고 재촉했습니다.

그러다 여론이 재신임 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13일부터 말을 바꿨습니다. "검찰수사가 미진하면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 설명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하자고 요구하다가 사실상 하지 말자고 말을 바꾼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한나라당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14일 대표연설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안은 명백한 속임수이자 고도의 정치술수"라고 선동하고 나섰습니다. 특검과 국정조사를 넘어 탄핵까지 들먹였습니다.

며칠 사이에 극에서 극으로 왔다 갔다 한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나라당의 원칙과 철학은 무엇입니까?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 같으면 오케이고, 불리할 것 같으면 아니오 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원칙입니까?

대책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원내 제1당 한나라당을 보고 국민들이 국정을 발목 잡는다고 비판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여론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가 그렇지 않으니까 뒤집어 버린 것입니다.

정말 국민을 외면하는 당리당략의 극치요, 발목잡기 구태정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며칠 전에 당 대표가 '대검 중수부장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의 실세'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런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데 특검과 국정조사를 거론하는 것은 무슨 영문입니까?

아무 이유도 없이 별안간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합니까?

한나라당이 이 시점에서 느닷없이 왜 특검을 주장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큰 비밀은 아닙니다. 이미 국민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진상규명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대국민선언을 무력화하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민주당도 다를 바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과 공조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그러면서 정통성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실망스럽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방송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민생과 경제가 어려운데 재신임을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민생을 챙겨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습할 수 없는 정쟁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걱정 했습니다. 다른 당도 그런 충정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정반대였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는 듯이 '연내에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또다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게 뭡니까?

반대를 위한 반대, 정쟁을 위한 정쟁 아닙니까?

어디로 가자는 것입니까?

13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표가 만났고, 14일에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3당 원내총무 회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3당 대표와 원내총무가 만났습니다. 이를 보며 '반민주연합'이라고 비판받던 90년의 3당야합이 떠올랐습니다. 과도한 추측입니까?

한 쪽은 대통령의 측근비리부터 규명하라며 탄핵운운하고 있고, 한 쪽은 위헌이라며 국민투표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쪽은 내각제 개헌과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뿌리도 다르고 말도 다른 세력이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권력게임을 하자는 것이 핵심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 통합신당은 이 부적절한 3자공조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3년판 제2의 3당야합'으로 규정할 것입니다.

신3당연합에 의해 의회독재가 탄생한다면, 이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할 것입니다.

정치가 무엇입니까?

이제 국민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전에, 정치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통합신당은 재신임 문제를 당당하고 떳떳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오직 '국민의 뜻'만 따르겠습니다.

의원 여러분!

노무현대통령이 제안한대로 12월 15일을 전후해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합시다. 이것이 압도적 다수 국민의 뜻입니다.

재신임 여부는 전적으로 국민에게 맡겨야합니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국론을 결집시켜야 합니다.

더 이상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부정부패는 공공의 적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부정부패는 공공의 적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고름은 살이 되지 않습니다.

썩은 살과 고름은 도려내야 합니다.

정치자금 의혹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권을 부정부패의 원천으로 지목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정치권이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해내야 하고, 또 할 수 있습니다.

검찰에 촉구합니다.

SK 비자금 등 각종 정치추문에 대해 근본적으로 수사해야 합니다. 누구의 눈치도 봐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검찰의 명운을 거십시오.

최도술 씨 의혹에 대해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수사해야 합니다. 정치권과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완전히 끊는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권 역시 성실하게 검찰수사에 응해야 합니다.

우리 통합신당이 먼저 하겠습니다.

다음엔 한나라당이 하십시오.

한나라당에 촉구합니다.

SK 비자금의 진실은 결코 감출 수 없습니다.

현금 100억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데도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 'SK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혹을 받고 있는 의원은 급기야 당이 보호해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자신이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지도부를 협박하는 것 아닙니까? 한나라당은 이 정치인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를 또 방탄으로 이용할 생각입니까?

국민들은 어처구니없어 하고 있습니다.

이 무슨 억지입니까?

이게 과연 사실상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제 1당의 자세일 수 있습니까?

건국 이래 최대의 국기문란 사건인 1,000억원이 넘는 안기부자금횡령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국민의 혈세를 가져다 자신들의 선거에 쓴 것이 법원의 판결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엉뚱한 궤변으로 혹세무민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국민들에게 백배사죄하고, 유용한 자금을 스스로 당장 국고에 반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14일 한나라당 대표 연설을 듣고 당황스러웠습니다. 한나라당은 말로는 정치개혁, 부패청산을 외쳤지만 정작 자신의 부패혐의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사과와 반성도 없었습니다. 그 흔한 유감표명조차도 없었습니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한나라당이 되길 바랍니다.

'기득권 포기'를 통해 정치개혁을 이룹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우리는 지난 대통령 선거를 통해 역사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국민의 여망은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국민은 낡은 정치를 버리라고 요구했습니다. 금권정치를 벗어나라고 명령했습니다. 투명한 정치를 명령했습니다.

이제, 정치권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 시대 정치인 가운데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실 저만해도 작년 3월에 정치자금으로 인한 고통과 수치심을 견디다 못해 양심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으로 쓰라렸습니다. 심지어 '현실정치인 김근태는 끝났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결국 당내 경선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겪어보니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동안 정치개혁에 대한 말은 많았지만 큰 진전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인 스스로 정치개혁에 대한 합의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얼마 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범국민정치개혁 협의회'을 공동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한데 대해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이미 최대표와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가 합의한 바도 있습니다. 정치인과 더불어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 법조계 등 각 분야 전문가가 함께 모여서 10월말까지 위원회를 구성합시다. 최대표께서 제시한대로 11월말까지 시한을 정해 입법 성과를 만들어 내도록 합시다.

의원 여러분!

만에 하나 정치개혁 없이 다시 총선을 치른다면 우리 정치가 어디로 갈까요. 생각하면 정말 두려워집니다. 어쩌면 정치개혁에 나라의 안위와 미래가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우리는 정치개혁에 대해 수도 없이 토론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도 충분히 나와 있습니다. 이제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합시다.

선관위와 시민단체 등이 정치자금 투명화를 위한 획기적 제안을 했습니다. 정치적 득실을 떠나 전면 수용합시다.

정당개혁에 나섭시다.

지구당을 폐지하고, 중앙당은 줄입시다. 확실하게 원내정책정당을 실현합시다. 상향식 공천을 의무화하고 국민경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여 정치를 국민에게 돌려줍시다.

망국적 지역감정을 뿌리뽑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칩시다. 현행 1인 1표의 비례대표 선거제도는 이미 위헌판결을 받았습니다. 즉각 개정해야 합니다. 대신 1인 2표의 '정당명부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합시다.

최병렬 대표께서도 정치개혁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좋습니다. 거의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통합신당은 정치권에 다음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집단적 양심고백'을 통해 정치개혁 '대국민약속'을 합시다.

뇌물 수수 등 부정부패 사건은 당연히 처벌돼야 합니다. 그러나 현행 정치자금법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과 관련있는 정치자금 내역을 미리 스스로 밝히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합시다. 이를 위해 '정치자금에 대한 특별법'제정에 나설 용의가 있습니다. 남아연방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법" 같은 모델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정치권이 함께 '선거법 지키기 대국민 약속'을 선언합시다.

내년 총선을 깨끗한 선거 원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일 모레 10월 18일부터 사전선거운동이 규제됩니다. 만일 18일 이후 누구든지 우리 당에서 선거법을 어기면 단호하게 조치하겠습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지도부도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우리 정치가 구태를 벗지 못하면 국민의 분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할 것입니다.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승부처'입니다.

21세기에 우리 사회가 경쟁력을 갖느냐 마느냐가 여기에 달렸습니다. 다가오는 총선의 진정한 승자는 우리 정치권 전체가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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