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우리가정의 밑바탕은 아직도 튼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951년이면 한국동란 이듬해다. 그 고생스러운 전란중에 태어난 아기가 1975년, 스물네살이 되어 결혼을 했다.
꿈에서 깨기도 전에 그녀는 뜻밖의 현실을 만났다. 오랫동안 신장병으로 고생하시던 시아버지가 남의 신장을 이식받지 않으면 더 이상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결혼 2년만의 일이었다.
의학적으로는 신장을 하나 절제하는 것이 별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자신의 멀쩡한 신장을 떼어내는 것에 동의하기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닐 것이다.
그후 이 주부는 남편과 함께 네자녀를 거느리고, 위로는92세의 시조모와 회갑을 넘기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모두 8명의 식솔이면 결코 적지않은 대가족이다. 그 살림을 꾸려가기도 숨이 찬 나날이었다.
그런 어느날 이 주부에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불행이 떨어졌다. 평소 오토바이를 몰고다니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5년전의 일이다.
그날부터 그녀는 여장부와 같은 나날을 살아야 했다. 안으로는 시조모와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하다못해 시조모의 목욕을 시켜드리는 일에서부터 밖으로는 생계를 위한 농사에 이르기 까지 그녀는 손이 열개라도 모자란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녀는 동네에서 불행을 당해 의지할 곳 없는 남매까지 떠맡아 한가족으로 살고있다.
올해 효행상 심사는 바로 이 주인공의 효행에 집중되었다.
한분의 예외도 없이 모두 만점을 주었다.
올해는 우연이지만 장기를 제공한 효행자가 두분이나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장기체공 자체를 높이 평가하거나 그 사실에 전적으로 감동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생명애라는 극한상황에서의 일은 감동을 주지만, 평소의 극진하고 꾸준한 봉양도 중요한 효행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정작 효행상 심사위원들의 감동을 자아낸 것은 어느해를 막론하고 세태가 뭐라든 우리의생활주변엔 아직도 말없이 인륜도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되는 가정의 밑바탕은 아직도 튼튼하다는 것에 한편 안도하며, 한편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숙연한 계기가 된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최종률 <중앙일보전무·논설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