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통제는 상대성 안에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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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청와대 직속으로 군비통제기구의 설치를 추진중이라는 보도는 지금까지 금기시되어온 군축문제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요한 현안문제로 부각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사실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22만1천평방㎞의 좁은 땅에 남미 전체의 군대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의 군병력이 오랜 불신속에 대결하고 있는 상황은 한반도 긴장상태의 핵심을 이루어 왔다. 이제 냉전의 주역들간에 군사대결 구조가 평화공존 체제로 바뀌고 있고 이에 발맞추어 군비경쟁이 군비축소로 방향전환을 시작하고 있는 때에 한반도에서도 같은 방향의 기류가 형성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정부가 「군비통제」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부르고 있는 군축 검토는 새해들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남북간 각급 회담을 통해 필연적으로 제기될 군축문제에 미리 대비한다는 데 1차적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미소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남북한은 다같이 예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군사비의 경제적 부담에서 풀려나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평축등 행사에 지나친 낭비를 한 북한으로서는 그 필요가 더욱 절실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거기다 동서 강대국간의 군사대결이 평화공존 방향으로 완화됨으로써 국제환경도 그와 같은 필요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태의 수준을 낮출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은 오랜만에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군축문제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우리로서는 국가의 안보가 걸린 지극히 민감한 문제로서 추호도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한편으로는 남북관계의 개선에 필수적인 신뢰성을 구축해 나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노력이 남북에 의해 또다시 위험스런 오판을 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고비마다 엄격한 형평감각이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전제를 놓고 우리는 정부에 몇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첫째,주한미군의 철수든 군비축소든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는 식으로 결정 또는 발표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고도의 전문성과 기밀을 요하는 부분이 많겠지만 전체적 테두리는 그때 그때 국민들에게 알려 공감을 얻어내야 되는 것이다.
둘째,어느 단계에서도 남북한간의 불균형이 오지 않도록 세심한 장단기 계획과 돌발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아울러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셋째,군축문제는 남북간 신뢰구축의 핵심부분이지만 전반적인 관계개선의 일환이므로 이 부문과 다른 부문의 진전이 엄격한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군비통제기구가 청와대 중심으로 국방부ㆍ통일원ㆍ외무부 실무진의 참가속에 조직된 것은 대비책의 일관성을 위해 당연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 기구의 신설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간 관계개선의 바탕이 되는 신뢰구축의 신선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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