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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덧수 사물놀이패|지구촌 곳곳에 「한국의 소리」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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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예측못할 변화와 발전이 기다리고 있는 90년대 벽두. 문화부 신설과 함께 문화예술계의 앞날에 대한 관심과 기대 또한 남다르다. 2000년대를 눈앞에 둔 마지막 10년을 시작하는 문턱에서 한국문화예술계의 큰 일꾼들은 어떤 일들을 꿈꾸며 새해를 맞았을까.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영역을 일궈온 이들의 일터를 찾아 경오년의 문화예술계를 미리 조감해 본다.

<편집자 주>
민족음악은 바로 세계적 음악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입증해 온 김덕수사물놀이패.
사물, 즉 장구·꽹과리·북·징을 들고 지구촌을 돌며 신기에 가까운 연주로 한국의 소리를 퍼뜨려 「신을 부르는 소리」라고까지 격찬 받아온 이들은 올해도 촘촘하게 짜인 국내·외 연주 및 워크숍일정에 따라 세계각국을 종횡무진으로 누벼야 한다.
지난4일 오후 취재기자가 서울 마포구 아현 3동에「한국 전통예술보존연구회」라고 문패를 붙인 이들의 사무실겸 연습실을 방문했을 동안만 해도 사물놀이 공연을 해달라는 전화가 두 차례나 걸려 왔을 정도니까 숱한 지방공연을 포함한 국내공연은 일일이 꼽기가 어렵다.
해외공연은 오는 3월17일부터 시작되는데 6주일에 걸친 유럽8개국순회연주에는 베를린에서 열릴 사물놀이 워크숍이 따른다. 지금까지는 국내 및 미국과 일본에서 「사물노리안」(사물놀이 열성팬들에게 붙어진 별칭)들에게 사물놀이 연주방법을 지도하기 위한 워크숍을 열어 왔으나 그 수요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유럽지역 사물놀이 팬들을 위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6월5일부터 약1개월동안은 세계타악순회공연이란 명칭으로 프랑스의 파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독일의 본·베를린·뮌헨, 스위스의 제네바등 유럽주요도시들을 도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월드컵축구대회에 즈음한 문화예술축전에도 참가한다.
7월초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워크숍을 가진뒤 영국의 BBC가 알래스카를 무대로 몽·고족에 대해 제작하는 TV특집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시애틀에서는 굿윌게임(Good-will Game) 문화예술축제에 출연한다. 이어 입본에서 워크숍을 마친 뒤 순회공연에 나선다.
9월의 공연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북경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가. 88서울올림픽 당시 그리스에서 열린 성화채화식 때 그리스의 여사제들을 감동시킨 사물놀이의 신들린 소리와 율동이 아시아인들의 가슴속에도 파고들 것으로 여겨진다.
11월에 또 한차례의 북미순회공연으로 90년도 해외공연을 일단 끝내기로 한 것은 국내·외 공연비율을 최소 50대50정도라도 유지하려는 기본방침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쇄도하는 공연요청을 모두 받아 들이기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까지 키워온 후배들이 국내·외 무대에 서도록 적극 밀고 있지요.』
이 사물놀이패의 장구잡이 김덕수씨가 말하는「후배」란 금산농고·한서고등 각 고등학교 농악반출신의 사물놀이패들을 뜻한다. 또 이들 가운데「사물광대패」는 올봄 육군본부군악대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어 김덕수사물놀이패의 선배들은 군악에도 사물이 뿌리 내리게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젠 전국에 수십개를 헤아리게 된 사물놀이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김덕수사물놀이패. 미국의 LA타임스지가『이들은 한국문화유산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이것을 세계의 다른지역에도 나눠 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듯이 김덕수사물놀이패는 사물놀이를 그저 보고 들으며 즐기는 청중을 확보하는 것 말고도 실제 그 쇳소리·가죽소리를 울리며 신명을 풀어 보려는 본격팬들을 위한 교육 또한 그 자신들의 중요한 역할로 여기고 있다.
지금까지의 사물놀이에 대해 연구·정리한 결과를 다시 집대성한『사물놀이 교칙본』을 올봄까지 한글 뿐 아니라 영어와 일본어로도 펴내기로 한 것 역시 바로 그 때문이다.
또 볼프강 푸쉬니(앨트색서폰)·린다 샤록(보컬)·두두 투치(퍼커션)·야마시타요스케(피아노)로 구성된 세계적 뉴뮤직그룹 레드선(Red Sun)과 함께 공연했던 실황을 담아 (주)성음에서 이달중 출반하는 LP 및 CD를 세계시장에 내놓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김덕수사물놀이패가 올해 할일은 이같은 연주및 교육·보급활동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지난78년 창단된이래 만11년동안 주로 농악을 갈고 다듬어 삼도농악가락·설장구가락등을 사물놀이 공연물로 만들어온데 비해 앞으로는 무속음악을 무대화하는데도 몰두할 계획이다.
지난연말 민속악회 시나위의 창단20주년기념공연에 찬조출연해 선보였던 『경기도 당굿』이 바로 이같은 작업방향을 암시했듯이 무속음악이 본격적으로 사물놀이 무대에 오르면 종래처럼 4명이 시종 무대를 꾸미는게 아니라 우리고유의 춤사위와 소리를 곁들이기 위한 출연인원이 첨가될 것으로 보인다.
사물놀이의 업적으로는 뭐니뭐니해도 국악의 대중화와 보급을 꼽아야 한다. 『국악이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음악』이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국악이야말로 마치 숨쉬기처럼 자연스럽고 우리 체질에 가장 잘맞는 신명나는 음악』이란 생각을 심은 것이다.
이로써 징과 꽹과리의 쇳소리는 신을 부르는 하늘의 소리, 장구와 북의 가죽소리는 하늘과 나란한 자연(땅)의 소리, 그리고 여기에 보태지는 사람의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이어주는 인성으로서 천지인 삼재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이 점점 널리 이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물놀이는 교향악단·재즈·대중음악·연극·무용등과의 합동공연을 통해 민속음악의 차원을 넘어 어떤 예술장르와도 만날 수 있는 경지를 열고 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머지 않아 세계의 여러악단들이 타악부분에 사물을 도입케 될 것』이라고 장담하는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한국음악계의 큰 일꾼들은 자체공연장은 커녕 변변한 사무실이며 연습실이없다. 현재 아현동에 세들어 쓰고 있는 43평의 연습실과 사무실조차 건물주인이 아예 팔아버리겠다고 내놓은 실정이어서 언제 거리로 나 앉아야 할지 모르는 처지다.
『사물놀이의 레퍼터리 개발을 위한 실험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작은 텐트극장이라도 하루 빨리 마련해야 겠어요.』
사물놀이가 너무 좋아 만사 제쳐놓고 7년째 모든 사물놀이 공연을 뒤 쫓으며 이 사물놀이패의 매니저역할까지 떠 맡고 있는 미국인 수전 삼스탁씨(30)의 간절한 소망이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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