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창문에도 총알구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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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배명복 특파원 루마니아현장에 가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권좌에서 쫓겨난지 48시간여 지난 24일 오전에도 루마니아는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관계기사 4, 5, 17면>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민중 편으로 돌아선 군부와 잔존하는 차우셰스쿠 추종세력인 보안군, 그리고 차우셰스쿠 축출로 거의 광적 상태로 돌변한 아랍계 테러리스트들이 뒤엉켜 루마니아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시간마다 상황이 바뀌는 지극히 불안하고 위험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는 각종 루머와 근거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어지럽게 나돌고 있었고, TV와 라디오가 전하는 뉴스도 시시각각 서로 달라져 도무지 사태를 종잡을 수 없는 혼란상을 보이고 있었다.
차우셰스쿠가 권좌에서 쫓겨나는 시발점이 됐던 티미시와라시와 아라드시의 민중봉기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헝가리와 루마니아국경인 나들라크 검문소를 통해 아라드에 도착한 것은 24일 오전10시30분 (현지시간).
지난밤에 있었던 총격전으로 아직도 시내곳곳은 총탄자국과 바리케이드 등으로 어지럽혀 있었고, 날이 밝으면서 시내로 몰러든 주민들로 아라드시내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도로 곳곳에 흰색 완장을 두른 청년·학생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오가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었고, 민중 편으로 돌아선 군인들도 흰색 완장을 두른 채 검문에 협조하고 있었다. 민간인중에는 총을 멘 사람도 간간이 눈에 띄었으며, 모두 며칠 밤을 새운 듯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시내 곳곳에는 「리베르테타」(자유) 라는 구호가 붉은색 페인트로 씌어있었고 「차우셰스쿠, 피로 목욕한 독재자」 「차우셰스쿠, 파시스트」 「드라큘라 차우셰스쿠」등 민중봉기 당시 주민들이 써놓은 구호들이 담벼락을 뒤덮고 있었다.
50여 구의 시체가 안치된 아라드 시립병원 앞은 병원을 지키는 젊은이들과 구경나온 주민들로 매우 혼잡했다. 보안군이 민중봉기를 진압할 목적으로 자동소총을 난사하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느라 모두들 열심이었다. 그때 죽은 사람의 상당수는 트럭에 실려 사라졌고, 이 병원에 안치된 시체 중에는 차우셰스쿠 축출이후 벌어진 총격전과 테러리스트들의 무차별사격에 의해 희생된 사람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아무도 도대체 몇 명이 죽었는지는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시체를 싣고 간 운전수들은 일을 마친 후 보안군에 의해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고 어느 사람은 말하고, 또 어느 노인은 아라드에서만 1천명은 죽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
병원 창문 곳곳에는 총알구멍이 뚫려있어 병원에도 총격을 가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병원 앞에서 만난 한 노인은 한국기자라고 말하자, 남이냐 북이냐를 묻더니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울! 올림픽!』을 연발하며 기자의 뺨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차가운 날씨에 시동이 안 걸려 여러 사람이 차 뒤에서 미는 모습을 보더니 그 노인은 『저게 바로 차우셰스쿠 배터리라는 거요』라면서 손을 내저었다.
국경에서 아라드시까지의 거리는55km. 다시 아라드에서 티미시와라시까지는 50km의 가까운 거리다. 그 시간 아라드에서 티미시와라로 통하는 도로는 군인들에 의해 차단되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서 아라드의 상황은 나아졌지만 티미시와라시는 아직도 보안군들에 의해 일부가 포위된 상태에 있고, 여전히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독재자가 물러나면서 루마니아에 남긴 상처는 아라드시의 경우와 같이 불안과 위협, 호란과 희생이었다. 사랑과 평화의 성탄전야의 아라드시주민들은 다가올 희망처럼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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