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SOS' … 미 전투기 추락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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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항군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영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인 2세 병사가 미태평양함대 소속 F-18 전투기와 파일럿의 생명을 구했다. 주인공은 8000명이나 되는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승무원인 찰스 황(21.사진) 상병.

황 상병은 이 공로로 최근 비전투 상황에서 장병이 받을 수 있는 최상위 공로훈장을 미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그의 활약은 올 3월 말 훈련 중에 이뤄졌다.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전시증원 훈련 중 황 상병이 근무하는 링컨 항모에 F-18 전투기가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항공모함과 함께 작전에 참여하는 F-18 전투기는 착륙할 때 꼬리부분에 달린 착륙고리를 밑으로 내리고 50m 남짓한 항공모함 활주로에 착륙하게 된다. 이때 활주로에 설치된 5개의 착륙 유도 로프에 착륙고리가 걸리면 무사히 항모 위에 내릴 수 있다.

작전을 마치고 항모에 착륙하려던 F-18 전투기 한 대가 여러차례 착륙을 시도했지만 착륙로프에 고리를 거는 데 실패했다. 계속된 착륙 시도와 선회비행으로 연료가 거의 바닥났다.

항공모함 지휘부에 비상이 걸렸다. 지휘부는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 S전투비행장에 비상착륙할 것을 전투기 조종사에게 명령했다. 이 전투기는 음속 1.8의 속도로 급히 기수를 돌려 한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같이 급박한 돌발상황을 한국 관제탑에 영어로 자세히 설명해 전투기와 조종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8000명의 승무원 중 유일하게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황 상병이 해결사로 차출됐다.

한인 2세인 황 상병은 어릴 때 성당에서 한글을 배워 한글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우리말이 유창했다. 그는 한국어로 긴급 상황을 한국 전투비행장 관제탑에 알렸고 S전투비행장 측의 착륙 허가를 받아내 무사히 파일럿과 F-18 전투기를 구할 수 있었다. 그의 활약으로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전투기를 구했고 전투기보다 더 비싸다는 파일럿의 생명까지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황 상병의 아버지인 황인협(51)씨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한인의 역량을 발휘해 너무 기쁘다"면서 "찰스같은 한인 2세들이 주류 사회에서 활동을 많이 해 한미동맹에 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LA지사=신승우 기자

◆ 에이브러햄 링컨호=1989년 취역한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항모 가운데 하나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 항모에서 이라크 종전을 선언해 유명해졌다. 올 3월 말 한.미 연합전시증원훈련과 독수리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를 찾았다. 링컨호는 길이 332.8m에 너비 76.6m로 축구장 3개 넓이의 움직이는 도시다. 9만7500t이다. 항모 안에 3개의 수술실에 8명의 의사가 근무한다. 하루에 물 1500t과 계란 2160개를 소비하고 2500㎏을 세탁한다. 건조비만 4조5000억원이 들어가며 연간 유지비가 300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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