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가는 전-정씨 여진통|「12·15 대타협」 후속처리 어떻게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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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이 청와대영수회담 합의사항의 실현과정에서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다. 백담사측이 전두환씨의 국회증언방법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데다 정호용 의원 역시 사퇴종용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난관에 봉착해 초조해진 여권은 가능한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한편으론 압력과 위협을 가하고 다른 한편으론 설득하고 있는데 전·정씨 모두 간단히 물러서지 않고 있고 내막적으로 공동대처방안을 모색한다는 소문도 나돌아 여권 내부가 부글거리고 있다.
○…지난 15일 청와대영수회담 직전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정호용 의원은 연락을 끊고 서울시내 모 아파트에 은거중인데 주변에는 검은색 승용차 3,4대가 대기하고 있는 등 사퇴문제에 대한 모종의 조치가 진행중인 긴박한 분위기.
정 의원 측과의 접촉은 일일이 체크되고 있고 밖으로 나돌아다닐 때도 승용차들이 따라붙어 행동을 견제하고 있으며 언론과의 접촉은 일체 차단.
민정당과 정부측은 정 의원이 『노 대통령 뜻에 따르기로 했으며 조만간 입장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정 의원의 의원직 사퇴절차가 곧 취해질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데 정 의원주변은 전혀 다른 감을 가지고 있다.
청와대가 자신의 사퇴를 추진한다는 보도에 반신반의했던 정 의원은 15일 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처음으로 사퇴요구를 받고 크게 당황했다는 것.
잠적중인 17일 이춘구 총장과 비밀접촉을 했는데 이 총장은 의원직사퇴를 공식으로 요구하면서 이에 따른 사후 보장책을 거론했다는 소문. 즉 그가 사퇴하더라도 광주책임과 상관없는 명예퇴진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다른 공직에 임명하거나 대구서갑 보궐선거에 출마해도 좋으며 필요하면 민정당 공천도 보장하겠다고 했는데 정 의원 측에서는 『물러나면 깨끗이 물러난다』 『믿을 수 없다』며 거절해 협상은 제자리걸음.
정 의원의 한 측근은 정 의원이 이 총장과 곧 다시 만날 예정인데 이 총장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면 빠른 시일 내에 입장표명이 있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잠적상태가 상당히 오래 계속될 것이라고 해 사퇴에 따른 조건문제가 거론되는 느낌.
이 측근은 지난8일 노-정 면담에서 친인척문제가 거론됐으며 지금까지 그를 밀어준 지지자들도 설득하게될 몇 가지 전제조건은 이뤄져야할 것 아니냐고 흘려 박철언 정무장관 등 주변정리 조건 등이 제시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
그러나 민정당 측은 그 동안 정 의원 주변에 몰려있는 수십 명의 지지자·서명파들이 이미 거의가 돌아섰고 청와대영수회담 후 5공 청산이 대세가 되었는데 일부 사소한 조건들을 내세우면서 반발해도 곧 수그러질 것이라고 주장.
이 소식통은 앞으로 합의사항 이 등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판에 지금까지 협상을 도맡아온 창구를 바꿀 수도 없지 않느냐고 해 당내개편과 같은 조치는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있어 당 쇄신이나 친인척 정리 등이 따를지는 미지수.
정 의원측의 버티기 작전이 무엇을 겨냥해 얼마동안 계속될지는 알 수 없는데 정 의원측은 의원직을 사퇴할 경우 새로 준공된 의원회관에 이사할 필요가 없다고 주저해왔던 의원회관입주를 18일 서두르는 모습을 보여 장기투쟁방침을 세운게 아니냐는 추측도.
일부에서는 정 의원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당정개편 등 당내쇄신조치가 취해지면 이를 명분삼아 퇴진하는 방법 ▲당내에서 남아 계속 지지자들과 함께 비당권파로 싸우는 방법 ▲탈당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있어 정 의원 거취문제는 아직도 오리무중상태.
○…국회증언을 하지 않을 줄로 생각하고 있었던 백담사측은 여야영수회담이 국회증언을 못박아 버리자 난감한 표정.
전씨 측은 일단 증언이 이뤄지면 사실대로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어물어물할 수도 없어 대책에 부심.
영수회담직후 장세동씨를 중심으로 안현태씨·이양우변호사·민정기비서관등 핵심측근들이 대책을 논의했는데 청와대영수회담에서 합의한 「서면질의-국회답변-보충질의」 증언방식은 도저히 받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방식 대로면 「1회 마무리증언」이 되지 못하며 보충질의도 4당 각 1명씩 질의하는 것이지만 국회의 5공·광주특위연석회의 현장에서 막상 질의가 시작되면 어떻게 돌아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보충질의와 답변에 대한 방식은 엄밀하게 처리되지 않고 있어 그 과정에서 일문일답질문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하루에 끝날지도 알 수 없어 「마무리」는 커녕 새로운 말썽만 낳을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백담사측은 이에 따라 보충질의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민정당에 통보하고 그것이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청와대합의가 무너져도 할 수 없다고 뻗대고 있다.
백담사측이 전씨 증언의 TV생중계를 고집하고 나선 속사정은 바로 보충질의를 반대하자는 것인데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증언방식에 따라 사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내막도 모른 채 야당주장을 덜렁 받았다』고 비난.
백담사문제 협의창구인 이한동 총무와 이양우변호사가 17일 낮 만났으나 나중에는 『합의가 깨져도 모르겠다』고 언성만 높이고 헤어졌다는 것.
청와대측은 어떻게든 연내에 증언을 실현해 내년으로 문제를 끌고 가지 않겠다는 방침이나 백담사측은 보충질의는 절대 않겠다는 것이고 야당은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해 그 틈바구니에서 진퇴양난.
게다가 민주당은 슬며시 전씨가 TV생중계를 하겠다면 들어주라고 문제를 만들 기세여서 더욱 난처한 입장이다.
민정당 측에서는 장세동씨 등 백담사측이 증언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노-전간에 감정을 씻고 신뢰를 회복하는 조치부터 선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노 대통령이 전씨와 만나거나 전화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으나 영수회담 후 당직자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또 합의사항 실천문제를 내게 들고 오면 용납하지 않겠다』고 불호령을 내린바 있어 이쪽저쪽 눈치만 보며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어있다.
전씨 측 생각은 기본적으로 증언할 생각이 없어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고 있는 것인데 거처를 서울로 옮겨주겠다는 보장에도 앞으로 상당기간 백담사에 머무르겠다고 버텨 전씨 증언실현도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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