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백신·정밀진단법 개발로 퇴치길 열러|간염확산과 백신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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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80년대 초 휘몰아친 간염공포바람은 생활패턴을 바꿀 만큼 거셌다.
간염바이러스의 전염을 우려한 나머지 술잔 돌리는 습관이 된서리를 맞고 한동안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술좌석에서 술을 권할 때면 으레 『나는 B형 간염이 없다』는 말을 진담반 농담반으로 건네는 새 풍속도가 자리잠았을 정도였다.
이 같은 표현들은 80년대 후반들어 AIDS(후천성면역결립증)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긴 했으나 간염은 여전히 심각한 국민보건문제로 남아있다.
전인구의 약10%(4백만명)가 B형간염바이러스에 감염돼 있고 이중 2백만 명은 실제로 만성간염 또는 간경변증환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료에 쓰이고 있는 항바이러스제인 인터페른 같은 약들이 5백만∼6백만원의 치료비에도 불구, 썩 만족스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은 실정이다.
간염퇴치를 위한 80년대의 가장 큰 성과로는 역시 B형간염백신의 개발이 꼽힌다.
간염백신은 미국MSD사가 76년 고도로 정제한 B형간염 표면항원을 포르말린으로 처리, 비활동화된 백신을 개발한 성과에 힘입어 81년 세계시장에 상품으로 것 선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서울대의대 김정룡교수팀의 약4년에 걸친 연구 끝에 국산백신이 정년부터 대량생산돼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간염퇴치 5개년 계획」을 세워 84년부터 간염예방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 해 1년 동안만도 2백만 명이 간염백신을 접종 받았다.
85년 들어 재일의학자 김재하박사가 간염백신 대량접종의 무용론을 들고 나와 국내의학계와 일대논쟁을 벌였다.
김박사는 접종대상자중체내에 B형간염바이러스의 항원·항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미감염자)은 바이러스에 노출되더라도 즉시 항체를 생성하기 때문에 성인에 대한 일률적인 무차별 접종은 경제적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혈액감염이 우려되는 일부 성인들과 ▲어머니로부터의 수직감염 또는 수평감염이 우려되는 3세 이하의 영아에 대한 접종에 주력해 예산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내의학계는 혈액이외에 음식물·침(타액)을 통해서도 간염이 옮겨지며 우리국민은 이 같은 위험에 모두 노출돼 있으므로 예방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이 필요하다는 반론을 거세게 펼쳤으나 결국 무차별 대량접종은 많이 줄어들게 됐다.
백신개발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간염의 정밀진단법이 80년대 들어 확립된 것이다. 미국에서 개발된 방사선 면역측정법(RIA) 등 B형간염의 정밀검사법이 국내 의료진의 노력으로 80년대 초 정착됐다.
그러나 전체간염 중 약25∼30%를 차지하는 비A비B형(B형간염은 약70%, A형은 약5%)은 정확한 진단법이 없어 큰애를 먹였다.
그러던중 지난해 미카이론사 연구팀이 비A비B형(NANB)의 혈청검사룰 할 수 있은 항체를 발견,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이 연구팀은 또 NANB를 C형간염바이러스로 명명, 확인하기도 했다·이로써 A·B·C형의 진단법이 확립된 셈이다.
80년대에 치료제로는 RIA엠피가 미스탠퍼드대의대에서 개발됐으나 86년 말 연구팀이 스스로 독성과 부작용이 심한 반면 효과는 거의 없다고 인정, 자취를 감췄다. 이는 치료제 개발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반영해주는 것이다.
국내외 의학계에서는 원래 항암제로 개발된 인터페론을 일시적인 치료제로 쓰고 있으나 거의 만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이처럼 뾰족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현대의학의 법주를 벗어난 각종 건강식품이 치료제로 선전돼 증세를 도리어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간염퇴치 기초연구로는 우리 나라의 간질환자가 미국·일본보다 훨씬 많은 만큼 국내의학계의 노력이 눈에 된다.
이원영 연세대의대교수(미생물학)팀은 거북이가 B형간염의 숙주임을 밝혀내고 간염바이러스를 계속 생성할 수 있은 세포배양에 지난86년 성공, 간염바이러스를 계속 집중 연구할 수 있는 길을 텄다.
또 김정룡 서울대의대교수가 국산백신을 개발해 제약회사(녹십자)로부터 받은 로열티로 세워진 서울대 간연구소는 88년 다람쥐 몸에서 헤파드나 바이러스를 발견, B형간염의 실험동물모델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한편 현재의 간염백신은 5년 후 재접종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을 막기 위한 「제3세대백신」의 개발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함경수박사는 단 한번의 주사로 평생 면역되는 백신의 핵심원료를 단백질합성법으로 지난 87년 대량생산, 추가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김영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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