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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FTA 음모론 말도 안 돼 … 허황된 주장 바로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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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만난 사람 = 홍병기 경제부문 차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제대로 체결되려면 미국과의 협상보다 여론 및 각종 이해집단과의 국내 협상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이런 지적에도 국내 협상에 미적거리다 결국 11일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로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장엔 지난달 18일 물러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가 임명됐다. 한 위원장은 경제부총리로서 미국과의 FTA 협상을 진두지휘하다가 이젠 국내 의견 수렴과 갈등 조정 등 국내 협상을 총괄하게 됐다.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은 직후인 11일 오후 한 위원장을 만났다.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여론이 예상외로 거세다.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가.

"FTA의 정확한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잘못된 사실이나 사실을 왜곡.과장한 정보가 진실처럼 퍼져가고 있어 이를 바로잡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

-어떤 주장이 잘못된 내용인가.

"한.미 FTA는 양국이 경제적으로 윈-윈(win-win)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초국적 자본과 국내 자본이 결합해 농민과 저소득층을 수탈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공기업을 다 민영화해야 하고 수도.전기 등 공공부문 요금이 대폭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한.미 FTA는 공기업 민영화를 강요하지 않을뿐더러 공공부문의 개방은 협상 대상도 아니다. 의료.교육분야의 영리법인 허용 문제도 FTA 협상에서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반대론자들은 FTA 때문에 진료비와 교육비가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잘못된 주장으로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문제다."

-반대론자들이 왜 그런 주장을 편다고 보나.

"세계화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교조적인 단순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가 너무 많다. 협상에서 논의된 내용과 결과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FTA 협상이 국민 갈등의 골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FTA가 이런 부담까지 안으면서 추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단호하게)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세계화와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0년 4%에서 2040년께엔 1%로 떨어진다. 이에 대비하려면 경쟁력을 키워야 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개방을 통한 경쟁이 더 많아져야 한다. FTA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간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개혁 프로그램이다. 물론 개방으로 인해 상대적인 소득분배가 나빠지고 소외계층이 생기는 등의 부작용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개방으로 늘어난 소득과 성장으로 확보된 재정으로 분배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니까, 시끄러우니까 아예 하지 말자고 해선 발전이 없다."

-지나친 개방은 서비스업 등 우리 경제의 취약부문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동안 개방 때문에 무너진 분야가 있는가? 유통시장 개방, 수입처 다변화 등 한국의 개방정책은 대부분 성공했다. 개방하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특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경쟁력 있는 나라다. 중국.일본이 먼저 미국과 FTA를 하고 우리가 뒤따라간다면 그 결과는 비극적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미 FTA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FTA 추진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음모론'까지 시중에 나돌고 있다.

"허황된 얘기다. 대통령의 FTA 추진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기본적으로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이를 추진한다고 노 대통령이 밝힌 적이 있다. 되면 좋고 안 돼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식이라면 대통령 바로 밑에 직속위원회를 만들 이유가 없다. 오늘도 (임명장을 준 뒤) 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하자는 말을 했다.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 중 일부가 지금은 FTA를 반대하고 있는 게 대통령의 입장에선 괴로운 일일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대통령이 정치적 이득을 노려 FTA를 추진한다고 생각할 순 없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인간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본다."

-노 대통령은 왜 그리 FTA에 적극적인가.

"실용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미 FTA가 올바른 정책이라면 대통령이 어떤 배경하에서 FTA를 추진하느냐는 부수적인 얘기 아닌가."

-FTA는 경제적 이슈인데 정치.외교적 이슈로 비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에선 자주가, 경제정책에선 개방이 강조되는 등 이념적 혼란 때문에 음모론이 나오는 것 아닌가.

"통치권 차원의 결정이라면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외교적 측면도 고려할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는 2003년부터 추진돼 왔고, 전작권은 최근 불거진 것으로 양자는 별개의 문제다."

-반대론자 중에는 FTA를 반미 등 정치 이념적인 사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건 구시대적 유물이란 점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우리의 현실이나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잘 보면 그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노 대통령도 과거 종속이론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 한때 그런 논리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라를 운영하다 보니 그런 이론이 맞지 않는다며, 이젠 개방을 반대하는 분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FTA 협상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비판도 있다. 2월의 FTA 협상 개시 선언도 전격적이었다는 반응이 많다.

"그렇지 않다. 2003년 이후 한.미 FTA와 관련한 정부 용역과 연구기관의 연구 및 세미나만 29차례 진행되는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쳤던 사안이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본격 거론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한.미 양국이 서로 협상을 위한 의지나 분위기를 다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동안 공청회 한번 제대로 열리지 못한 것은 문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는 공청회를 열려 했지만 반대세력 때문에 무산됐다. 그렇다고 공청회 때문에 FTA 협상이 지연돼선 곤란하다."

-협상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협상 문서를 아예 공개하는 게 낫지 않나.

"그러면 협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또 이해당사자가 많기 때문에 공개 범위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다. 의회가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에서도 의회에 모든 사항을 공개하진 않는다."

-FTA 협상을 위해 스크린쿼터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미국의 요구대로 받아들였다는 비판이 있는데.

"쇠고기 수입 재개,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 약값 재평가 개선안 추진 등은 FTA 논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 통상현안일 뿐이다. FTA 협상을 위해 통상현안을 미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게 양국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스크린쿼터의 경우 이를 선결조건으로 처리하지 않았다면 협상이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이들 현안의 처리 과정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미국과의 협상이 타결돼도 의회 비준이 남아 있다. 의회 비준을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협상이 이뤄지면 국회가 비준할 것으로 본다. 이런 점을 고려해 협상의 주요 내용을 비공개 원칙 아래 국회에 계속 보고하고 있다."

-FTA의 긍정적인 효과가 당장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텐데.

"당장 이익을 보게 될 분야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의 관세가 이미 낮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픽업트럭의 관세는 25%다. 관세율이 20~50%인 섬유류 제품이 전체의 20%에 이른다. 그런데 일본.중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해 무관세로 미국에 이들 제품을 수출하는데 우리는 관세를 문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일본과 멕시코의 FTA 체결 후 우리 타이어를 실은 배가 태평양을 건너가 되돌아온 일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 시장을 우리가 선점해야 한다. 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FTA가 우리의 소득과 고용을 늘릴 것이다. 성장을 통해 국가 재원이 많아지면 사회안전망을 더욱 쉽게 구축할 수 있어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높은 수준의 개방보다는 낮은 수준의 개방부터 천천히 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과 미국은 산업구조가 보완적이어서 높은 수준의 FTA가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본다. 우린 제조업이 미국보다 강하고, 농업과 서비스는 미국보다 떨어지는 분야가 많다. 높은 수준의 FTA를 통해 (우리에게) 유리한 부분과 불리한 부분이 서로 맞아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FTA의 이점이 그렇게 많다면 정부가 그동안 홍보에 실패했다는 얘기가 된다.

"앞으로 분야별로 세분화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농업.제조업도 세분화해 관련 효과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또 해당 업종 관계자들의 생각을 반영토록 하겠다."

-미국의 신속협상권(TPA) 시한(내년 6월) 때문에 협상을 서두른다는 비판도 있는데.

"사실 양국이 서로 이슈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TPA 종료 시한 이전에 끝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한에 얽매여 결정적인 것을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한 위원장 등 친미파들이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웃으며) 특정 국가에 오래 살면 더 그 나라에 반대하는 반골이 되는 경우도 많지 않나. 친미파라기보다는 우리나라가 세계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제파'라고 부른다면 동의하겠다."

-FTA와 인연이 매우 깊다.

"한.미 FTA는 우리가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교조적이고 이념적인 주장에서 벗어나 경제적인 시각에서만 봐 달라. 한국에 불리한 점이 있는 분야는 최대한 보완할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 언론.국회.행정부와 국민이 모두 원활하게 소통해 의견이 합치되도록 노력하겠다."

정리=김준현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