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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평생 경쟁하고 순위가 매겨지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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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강남의 사교육 논술시장은 '과거의 386 운동권' 출신이 사실상 석권하고 있다. 취재팀 확인 결과 강남 입시 논술 시장의 양대 산맥인 유레카와 초암을 비롯해 C.N.H 등 대표급 논술 학원들의 대표나 강사 상당수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이었다. 80년대 이들은 '노동자와 농민' '평등한 사회' '민족'등을 외쳤다. 하지만 이젠 강남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어 "교육 양극화를 확산시킨다"는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들에 대해선 "학생들을 의식화시키려고 논술 시장에 뛰어든 게 아니냐"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학부모들도 있다. 반면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더니 학원 장사를 해서 떼돈을 번다"(김진경 전 청와대 비서관)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만난 운동권 출신 논술 강사들은 대부분 "학생 의식화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강남구 대치동 유레카 논술아카데미 대치본원. 매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합격생을 수백 명씩 배출한다. 이 학원 이해웅(40.사진) 원장도 '386 운동권'출신이다. 한국외국어대 85학번이고 88년엔 총학생회 부회장도 지냈다. 92년 자유민주통일(자민통) 사건으로 수배돼 3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96년 그는 학원 강사로 변신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고, 그는 강남 논술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재팀은 유레카 대치본원 이 원장을 8일 저녁 만났다.

-왜 학원 강사가 됐나.

"수배가 해제된 뒤 먹고살기가 막막했다.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가 10년이 지났다."

-유레카에 운동권 출신 강사는 얼마나 되나.

"전체의 30% 정도다. 그런데 운동권이 어떤 범주를 말하는지 모르지만 그 시대에 길거리에서 데모한 사람이라고 본다면 전부 다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모였나.

"한두 다리 건너 아는 분들이 도와주다 전업한 케이스가 많다. 지난해부터는 공채를 했다. 지난해부터 분원이 생기기 시작해 현재 22곳으로 늘었다."

-운동권이 사교육에 앞장선다는 비판이 있는데.

"(우리를)변절자나 신자유주의의 첨병처럼 얘기한다. 운동했던 사람은 운동만 하란 말이냐."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김진경씨는 386이 사교육 시장을 장악해 교육개혁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사교육이 문제라는데 왜 우리만 탓하나. 정부가 최근엔 제대로 교육정책을 한 게 없다. 2002학년도엔 절대평가를 한다고 했다. 큰 틀에선 문제가 없었지만 내신 절대 평가를 하려면 전국적으로 시험 수준이 동일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2008학년도엔 상대평가를 하겠다지만 그것도 혼란스럽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불안하면 주가가 떨어진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원하는 건 (교육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과거엔 부자들을 비판했는데, 강남 아이들을 상대로 부의 대물림을 도와준다는 지적도 있다.

"애들은 그냥 애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보듯이 우린 가르치는 과정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운동권 출신 강사들이 편향된 이념을 학생들에게 불어넣는 건 아닌가.

"편향은 없다. 운동권이었다고 다 좌파는 아니다.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정도가 맞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번다던데.

"오해다. 배우로 치자면 사교육(수능.내신) 강사는 영화배우고, 논술 강사는 연극배우라고 보면 된다."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나.

"과거엔 운동하면 좋고 안 하면 소시민이었다. 대기업에 취직하면 욕먹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도 필요 없는 사람은 없더라. 평생 경쟁하고 순위가 매겨지는 세상이다. 능력을 계발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세상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민거리는.

"공정한 게임이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입시 등 정보의 격차가 학력 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학원비를 내는 아이들만 그런 정보를 제공받는 게 아닌가.

"온라인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사교육만 그러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고민이다."

고정애 기자, 강승우.김윤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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