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우리 민족문화상징이 100개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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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문화관광부는 '100대 민족문화상징'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전자로서, 민족문화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제고 및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것의 발굴과 제정을 위해 문화부는 지난 1년 남짓 전문가 연구용역과 자문 및 여론조사를 거쳤으며 연말까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자못 의욕에 차 보이는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사업은 그러나 일반 국민이나 언론 등으로부터 각별한 주목을 끌고 있지 못한 듯하다. 예외가 있다면 일간지 한 곳이 문화부의 발표내용을 대서특필한 다음 관련 기획기사를 10회 연속 싣기 시작했다는 정도다. 그 신문은 문화부에 설치된 이른바 '신문발전위원회'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는 곳인데, 물론 '100대 민족문화상징' 띄우기는 그것과 전혀 무관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100대 민족문화상징' 사업 자체다. 무엇보다 국가기관, 그것도 문화 주무 부서에서 시행하는 사업이라 보기 민망할 정도로 선정기준이 비논리적이고 비체계적이다. 가령 분야를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6가지로 나눈 근거도 그렇지만 분야별 개수(個數)조차 들쑥날쑥 춤추는 이유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제1분야에 속하는 태극기나 무궁화는 국가상징으로서 자명(自明)한 게 아닌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애국가는 왜 거기서 빠졌는가.

민족문화상징 100개는 분류의 수준과 각각의 등가성 측면에서도 애매모호한 대목이 많다. 가령 고려청자나 백자 전체를 천상열차분야지도나 제주도 돌담과 동급(同級)으로 간주해도 좋을까. 한석봉과 어머니가 과연 선(禪)이나 효(孝)의 세계와 동격(同格)으로 만날 수 있을까. 김치와 고추장, 불고기와는 달리 유독 비빔밥만 전주비빔밥인 까닭은 무엇인가. 전주비빔밥이 대수라면 진주비빔밥은 왜 아닌가.

초가집, 삼계탕, 춘향전, 퇴계, 금강산이 포함되는 마당에 기와집, 보신탕, 흥부전, 율곡, 설악산은 왜 탈락했는지도 몹시 궁금하고, 수많은 명산고찰(名山古刹)을 제치고 절로서 석굴암 하나 달랑 뽑힌 것도 무작정 반기기 어렵다. 한국인 특유의 정(情)이나 한(恨)을 빠뜨린 채 정보기술(IT)과 길거리응원이 '민족상징'으로 부상한 것 역시 달갑지 않다. 김밥과 라면은 일본에서 파생했기에 제외했으나 자장면은 중국에서 기원했기에 무사하다는 주장도 명분이 약하다. 민족문화상징 100개 중 일본과 직접 관련된 것이 독도.동해.이순신.안중근.유관순 등 다섯 가지에 이른다는 점 역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런저런 의문은 사실상 끝이 없다. 물론 정책을 시행하다 보면 모든 이가 수긍하는 객관적 기준과 보편적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게다. 그런 점에서 민족문화상징 100가지 개개에 대한 시시비비보다는 그것을 발굴.선정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배려도 필요하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민족문화상징 관련 사업은 원천적으로 재출발하기를 권한다. 과정이나 절차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더라도 민족문화상징을 100개 뽑기로 한 것이 원초적 패착(敗着)이었지 싶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보나 보물을 일정한 숫자로 제한하는 일이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처럼 민족문화상징 또한 개수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한 것이다. 이럴 때 문화부 스스로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시행해 왔던 '이달의 문화인물' 선정사업은 하나의 정책 모델이 될지 모른다. 굳이 국가가 앞장서 민족문화상징을 제정하고 싶다면 '10대'니 '100대'니 하는 겉멋에 취하기보다 매달 하나씩 신중하게 지정해 그것에 대한 국내외적 공감대를 넓히는 쪽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지만 정부 정책은 결코 떡이 아니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