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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아니어도 행복해, 파리가 있으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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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도쿄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안바울(왼쪽)과 은메달리스트 조구함이 메달을 들고 웃었다. 둘은 “최선을 다했으니 당당하다”고 했다. 정시종 기자

도쿄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안바울(왼쪽)과 은메달리스트 조구함이 메달을 들고 웃었다. 둘은 “최선을 다했으니 당당하다”고 했다. 정시종 기자

“요즘 푹 쉬고 있어요. 불과 며칠 전까지 올림픽에서 치열하게 경기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메달을 봐야 실감이 나죠.”

도쿄올림픽 은·동 딴 ‘유도 에이스’ #조구함, 결승 한판패 후 상대 축하 #쥐난 상대 기다려준 스포츠맨십도 #안바울 “창피하지 않다, 3년 뒤 금”

13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도쿄올림픽 유도 국가대표 조구함(29·KH그룹 필룩스)과 안바울(27·남양주시청)은 손에 든 메달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조구함은 대회 남자 100㎏급 은메달, 안바울은 남자 66㎏급 동메달을 따냈다. 조구함과 안바울은 도쿄에서 금메달 1개 이상을 노렸던 한국 유도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비록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둘은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조구함은 자신의 첫 올림픽 메달이자, 2004년 아테네올림픽(장성호 은) 이후 17년 만에 한국의 100㎏급 메달을 수확했다. 그는 첫 출전이었던 2016년 리우 대회에선 예선 탈락했다. 안바울은 김재범(2008년 베이징 은, 2012년 런던 금) 이후 9년 만에 올림픽에서 2회 연속 메달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그는 리우에선 은메달을 땄다.

안바울은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 창피하거나 미안한 마음은 없다. 최선을 다해서다. 나의 두 번째 올림픽은 후회 없이 즐긴 대회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구함은 “올림픽 전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대회 후 사라졌다. 부담을 털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덕분이다. 어디에서나 ‘은메달을 따서 행복하다’고 당당히 말한다”고 밝혔다.

조구함과 안바울은 신인 시절 태릉선수촌 룸메이트였다. 리우올림픽을 준비하는 3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이 기간 살을 찌우고 빼는 고통도 함께 나눴다. 안바울은 60㎏급에서 66㎏급으로 한 체급을 올렸고, 조구함은 100㎏ 이상급에서 100㎏급으로 내렸다. 현재 한국 대표팀에서 체급을 변경한 선수는 두 사람뿐이다. 조구함은 “체중 조절 자체도 고통이지만, 체급을 바꾼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동반된다. 바울이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잘 버텨냈다”고 떠올렸다.

두 사람은 도쿄에서도 찰떡 호흡을 보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무관중 경기로 치러진 점을 활용했다. 조구함은 “경기 중 공격 기회가 생기면 선수석에 앉아 있는 바울이에게 ‘지금 공격해’라고 외쳐달라고 부탁했다. 관중이 없다 보니 바울이 목소리가 또렷하게 잘 들렸다.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메달만큼 주목받은 것은 두 선수의 스포츠맨십이었다. 조구함은 결승에서 일본의 에런 울프(25)에게 골든 스코어(연장전) 접전 끝에 한판패를 당했다. 조구함은 울프와 한 차례 대결해 이긴 적이 있어서 자신감이 있었다. 패배가 더 쓰라렸다. 그러나 조구함은 울프의 손을 들어 승리를 축하했다. 이 모습은 많은 이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조구함은 “우승하면 지금까지 했던 고된 훈련이 머리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감격해서 우는 울프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내가 이겼어도 저랬을 것 같아서 축하해줬다”고 말했다.

조구함은 준결승에선 조르지 폰세카(29·포르투갈)가 경기 도중 손에 쥐가 나 고통스러워하자,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를 본 팬들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라며 칭찬했다. 조구함은 “상대가 약점을 보일 때 공격했다면 손쉽게 이겼겠지만, 그건 페어플레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바울은 리우올림픽 결승에선 당시 세계 26위 파비오 바실레(이탈리아)에게 패한 뒤 서럽게 울었다. 세계 랭킹 1위였던 안바울은 한 수 아래 상대에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번엔 달랐다. 지난 대회 성적에 못 미친 동메달을 목에 걸고도, 시상대에서 활짝 웃었다. 안바울은 “이번에도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슬퍼서 그랬던 건 아니다. 오히려 다시 한번 올림픽 시상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구함과 안바울은 올해까진 휴식과 치료를 병행하고 내년 매트에 복귀할 예정이다. 다음 목표도 생겼다. 안바울은 “파리올림픽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땐 내 기술과 경험이 정점을 찍을 것이다. 은과 동은 있으니, 금메달을 목에 걸고 멋진 마무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조구함은 “은메달이 좋은 건 아직 금메달이 남아서다. 은메달 그 자체로 기쁘지만, 동시에 동기부여도 된다. ‘나라를 구하라(조구함)’는 뜻의 이름처럼 한국 유도에 금메달을 안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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