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직시생·맘시생까지…‘평생 직장’ 공무원 갈아타기 열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2021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면접시험이 열린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응시생들이 면접시험 대기장소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면접시험이 열린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응시생들이 면접시험 대기장소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최모(33)씨는 지난해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학습 모임에 참여한다. 최씨는 “공무원이 되면 업무 스트레스가 적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늘어나 공부할 틈 생겨 #“스트레스 적고 정년보장·워라밸” #일부선 “인재 쏠리면 국가적 손실”

최씨처럼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직시생’이 적지 않다. 직시생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뜻하는 ‘공시생’과 직장인을 합친 말이다. 시험에 떨어질 경우를 대비하면서 현재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공공-민간부문의 처우 간극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무원은 요즘처럼 경제가 악화한 상황에서도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워라밸’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 들어 공무원 채용 규모를 크게 늘린 것도 직시생 증가에 한몫했다.

“올해 공무원 취업 준비중”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해 공무원 취업 준비중”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취업정보 업체 인크루트의 정연우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장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가 자리 잡은 것도 직시생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며 “자기 계발 시간이 많아지면서 직장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등 시험에 집중할 시간이 더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인크루트는 지난 3월 22~29일 회원 10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회원의 52%는 직장인이었다. 2019년 조사 때(45.9%)와 비교하면 6.1%포인트, 2016년 조사 때(38%)와 비교하면 14%포인트 증가했다.

이번 조사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연령대별로 보면 30대(48.1%)가 20대(47.2%)를 웃돌았다. 40대 이상도 4.7%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했다. 2019년 조사에서 20대(54%)가 가장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공무원 취업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공무원 취업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부 공시생인 ‘맘시생’(엄마+공시생)도 늘어나는 추세다. 네이버 카페에서 맘시생을 검색하면 “○○엄마가 아닌 제 이름으로 삶을 다시 시작한다” 같은 게시글 1만여 건이 나온다. “아이를 유치원 보낸 시간과 아이가 자는 새벽에 최대한 많이 공부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주말에는 무조건 도서관에 갔다” 등 학습 방법을 소개하는 글도 다양하다.

맘시생은 출산ㆍ육아로 인해 불가피하게 직장을 그만두거나 구직 활동을 중단했던 여성들이다. 살림ㆍ교육 비용 마련에 보탬이 되고,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다시 수험서를 펼쳐 든 경우가 많다. 기혼자들이다 보니 거주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지방직 9급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들은 한동안 경력이 단절된 상태여서 민간 기업에 취업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은 채용 때 경력보다는 시험 점수의 비중이 높다.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자가 몰리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국가 경제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인재들이 민간 대신 공공부문에 몰리면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시험 준비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생산ㆍ소비의 기회비용도 커지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은 “한국의 생산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세계의 첨단 정보ㆍ기술 전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며 “능력 있는 인재들을 공공부문에 몰아넣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며 사회의 인력 배분에 왜곡을 가져온다”라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