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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에서스탈린 주의 사망 축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일 정오 (현지 시간) 동베를린의 인민의회 (국회) 앞. 장송곡 가락에 맞춘 북소리가 둥둥 울리는 가운데 검은 관이 놓여졌다. 「1949∼1989·스탈리니즘」. 수천명의 시위 행렬을 선도한 이 관이 놓여지는 순간 지난 몇 주 동안 동독에서 진행돼 온 개혁 운동이 절정에 이른 느낌이었다.
텅빈 3개의 국기 게양대에 시위 군중들의 플래카드가 올라간다. 프라하의 살육을 중단하라 -정치국 결정」지난 40년간 동독의 군중 집회가 열리며 사회주의의 승리를 구가하던 알렉산더 광장에서 집회를 갖고 2km남짓 행진해온 군중들은 들고 온 플래카드와 피킷을 인민 의회 앞에 늘어놓는다.「마르크스가 깜짝 놀라 무덤에서 깨어났다」. 동독 공산당의 약자인 SED의 머리 글자를 따서 풍자한 「스탈린 주의자들, 에고이스트들 (이기 주의자들), 데마고겐(흑색 선전)」「여행 자유화가 마취제가 아니기를…」,그런가 하면 동독 시민들의 서독 선망을 경계하자는 「돈의 힘에 멍드는 모럴」「개방으로 공해는 없기를」.
정치 개혁을 원하는 여러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이 시위의 구호들은 각양각색이었다. 「호네커 보따리 싸라」「특권층의 재산을 내놔라」「공산당 있는 한 여행 자유 미덥지 않다」 .
봇 물 터지 듯 각종 욕구를 분출시키는 시위 군중들을 여남은 명의 경찰이 지켜볼 뿐 제지하지도 않았다.
불과 1주일 남짓의 개혁치고는 너무 빠른 템포에 숨이 턱에 닿을 정도다. 의사당 앞에 모여 갖가지 구호를 외치며 희열에 들뜬 얼굴이 있는가 하면 눈물이 그렁대는 눈시울도 보였다.
새로운 지도층의 개혁 의지를 보이는 것일까. 집회가 끝난 지 5시간이 넘도록 인민 의회 앞에 놓인 검은관과 수십 개의 플래카드가 가지런히 놓인 채 오가는 행인들이 구경하며 환희에 들뜬 표정들이 인상적이었다.
동독의 개혁은 「동무들 더 빨리. 뒤에서 우리가 앞지른다」「에곤 크롄츠, 우리와 경쟁하자」는 구호들처럼 시민의 저변에서 분출하는 열기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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