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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칭 흔했다"는 김의겸 의원,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이상언의 '더 모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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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김의겸 의원의 기자 매도 발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좀 나이가 든 기자 출신들은 사실 굉장히 흔한 일이었고요. 아마 제 나이 또래에서는 한두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중략) 윤석열 총장이 이걸 고발한 거 저는 너무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어제 YTN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흔한 일’은 경찰관 사칭입니다. 김 의원 발언을 접하는 순간 당황, 분노, 측은함이 뒤섞인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김 의원은 저보다 다섯 살 많습니다. 제가 정확히 그 ‘또래’는 아니라서 그 ‘흔한’ 일을 못 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 일했던 김 의원 연배의 선배들이 경찰관 사칭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몰래 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김 의원 발언은 기자들이 과거에 경찰관, 검사, 검찰 수사관을 흔히 사칭했고, 지금도 자주 하고 있다는 시민들의 오해를 부르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굉장히 흔했다’는 주장의 근거를 김 의원에게 요구합니다. 본인의 개인 경험 또는 주변 사람들의 행태가 근거라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반화입니다. 김 의원 또는 그와 가까이 지낸 기자들은 그랬는지 모르지만, 제게는 기자가 경찰관을 사칭하는 것은 ‘지극히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4년 차 기자였던 1998년에 타 언론사 동료 기자가 경찰관을 사칭해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기자는 현직 교사들이 연루된 고액 과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 집에 경찰관을 사칭하며 전화를 걸어 문제가 됐습니다. 그 기자의 소속 언론사는 곧바로 그의 취재 권한을 박탈하는 인사 조치를 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사칭이 굉장히 흔한,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취재 중인 사안의 결정적인 팩트가 확인되지 않으면 기자들이 경찰이나 검사처럼 수사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찰관이나 검사 행세를 하며 진실을 캐고 싶다는 욕심도 생깁니다. 하지만 섣불리 그런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위법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사기쳐서 정보 얻는 것은 사이비 기자나 하는 짓입니다.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힘들게 진실을 찾아가니까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아직 기자를 존중한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누가 우리를 귀하게 여겨주겠나?”

딱 한 달 전에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들에게 보도 준칙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그날 언급한 신문윤리실천요강의 제2조 1항에 ‘신분을 위장하거나 사칭하여 취재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4조에는 ‘우리는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김 의원이 기자였을 때도 이 조항들이 있었습니다. 어겼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무슨 자랑거리라고 그리 당당하게 말합니까?

김 의원님,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해 취재하던 MBC 기자들이 경찰관 사칭으로 처벌을 받을 상황에 처하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렇게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기자들이 공무원 사칭이라는 범죄를 마구 저질러 온 것처럼 이야기한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자들에 대한 심대한 모독입니다. 특히 ‘또래’ 기자들에겐 명백한 명예 훼손 행위입니다.

기자 경력으로 청와대 대변인과 국회의원의 권력을 얻고 누리면서 왜 기자와 언론을 이토록 매도합니까? 왜 자신이 떠난 곳에 구정물을 끼얹습니까? 국민에게, 언론계에, 전·현직 기자들에게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더는 한때 기자였던 것 내세우지 마십시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도 경찰을 사칭해서 취재하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의 증언을 들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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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기자 후배’ 김의겸에 “경찰 사칭은 생각도 못한 일”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군 관계자들과 면담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군 관계자들과 면담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일보 기자 출신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과거 기자들이 경찰을 사칭해 취재하기도 했다는 한겨레 기자 출신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정 의원은 1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김 의원의 얘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며 글을 올렸다.

최근 MBC 취재진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 관련 취재를 하며 경찰을 사칭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윤 전 총장 측은 해당 MBC 취재진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수사권이 없으니까 경찰을 사칭한 것으로 보인다”며 “나이가 든 기자 출신들은 사실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며 윤 전 총장 측의 고발은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의원은 “김 의원보다 4년~5년쯤 기자 생활을 일찍 시작했다”며 “경찰을 사칭해서 전화를 걸고, 취재한다? 내가 요령이 부족한 기자였나”라고 했다.

정 의원은 지난 2001년 입사한 후배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 ‘가끔 경찰을 사칭해서 취재하는 일이 있었나’라고 물었다고 밝혔다. ‘전혀 없다, 저희 때도 경찰 사칭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답장을 받았다고 정 의원은 설명했다.

정 의원은 “김 의원이 일했던 신문사의 취재 윤리가 ‘경찰 사칭 취재’를 당연히 여기는 수준이었나”라며 “먼저 신문사에서 일했던 저는 ‘경찰 사칭 취재가 불법행위’라는 사실을 선배들로부터 교육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을 사칭하는 취재가 김 의원 주변에서는 흔한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당시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라며 “기자가 경찰을 사칭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은 잘못된 것이고, 기자가 경찰을 사칭하는 것은 괜찮은 것인가”라며 “기자가 수사권이 없어 경찰을 사칭했다는 김 의원의 얘기는 또 무슨 궤변인가”라고 반문했다.

정 의원은 “기자가 누리는 언론의 자유, 취재의 자유는 사법부가 허용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취재의 자유가 마구잡이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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