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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벼워져” MZ세대 10명 중 3명 고기 먹는 간헐적 채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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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08면

[SPECIAL REPORT]
‘플렉시테리언’이 뜬다

샐러드 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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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모(28)씨는 지난 3월부터 ‘간헐적 채식’을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저녁 식사를 ‘채식 먹는 날’로 정했다. 175cm의 키에 대학 시절 70kg 안팎의 몸무게를 유지해 오던 그는 3년 전 입사한 뒤로 몸무게가 급격히 늘어 80kg을 넘어섰다. 어렵게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음식 조절에 실패해 이내 요요 현상도 찾아왔다.

다양한 채식 트렌드 확산 #채식만 고집 ‘원리주의’ 벗어나 #프루테리언·비건 등 단계별 즐겨 #채식 인구 250만 명 중 비건 50만 #대체육 시장 2000만 달러 ‘걸음마’ #대학·공공기관 식단도 채식 늘어 #“식물·동물성 단백질 7대 3 좋아”

“안 먹고 버티는 식의 무리한 다이어트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더 꾸준한 방식으로 식단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어요.”

그가 채식에 도전하게 된 것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The Game Changers)’를 보고 나서다. 2018년에 나와 큰 인기를 끈 이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종목의 운동 선수들이 채식을 통해서 더 나은 기량을 가지게 됐다는 내용이다. 영상에 나온 운동선수들은 “채식이 운동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채식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흔히들 힘을 쓰려면 고기를 자주 먹어줘야 한다고 하잖아요. 특히 야근이 잦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체력이 달리다 보니 1주일에 두, 세 번은 꼭 저녁 식사 메뉴로 고기를 찾았죠. 식단의 변화가 필요했는데 이 다큐멘터리가 도움이 됐죠.”

간헐적 채식 4개월째인 그는 “지금은 1주일에 네끼만 채식 식단으로 먹고 있는데 체중이 크게 줄지는 않았지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라면서 “올 하반기부터는 채식을 조금씩 늘릴 생각이다”라고 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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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나 연예인 중에서도 채식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인 롯데자이언츠 소속 투수 노경은(37)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단백질 섭취가 필수인 운동선수가 채식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지만 그는 “식물성 프로틴을 섭취하며 보충을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체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군살도 없어지고 오히려 몸이 좋아졌다”고 했다. TV 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에 나와 유명해진 방송인 줄리안도 대표적 채식 마니아다. 하지만 그는 매끼를 채식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절반 정도만 채식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엄격한 채식’ 보다는 ‘즐거운 채식’을 추구한다고 했다.

줄리안처럼 채식만을 고집하는 ‘채식 원리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의 식습관 등에 맞춘 다양한 방식의 채식법을 부담 없이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채식에도 단계가 있다. 과일·견과류·곡물만 먹는 ‘프루테리언’, 채소까지 먹는 ‘비건’, 평소 육식을 하지 않지만 회식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고기를 먹는 유연한 채식주의인 ‘플렉시테리언’등이 그것이다(그래픽 참조). 줄리안은 플렉시테리언에 속한다.

채식만을 고집하지 않는 이런 다양한 방식의 채식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 채식주의자 수는 2008년 15만 명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 10배 증가했다. 최근에는 전체 인구의 4% 수준인 25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 중 엄격한 채식을 하는 비건 인구는 50만 명 정도라고 한다. 비건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은 전국 350~400개로 추정된다. 매년 증가추세라고는 하지만 국내 외식업체 수가 약 67만 개임을 고려하면 비건이 방문할 수 있는 식당의 수는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것이 연합회 측의 설명이다.

국내 채식 시장 규모는 세계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아직은 그 규모가 작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세계 대체육 시장은 미국이 약 10억 달러(21.0%) 규모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영국 6억1000만 달러(12.9%), 중국 2억8000만 달러(6.0%), 독일 2억6000만 달러(5.5%), 일본 2억2000만 달러(4.7%) 등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2000만 달러 수준이다.

수년 전부터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채식 문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내 시장 규모도 조금씩 커질 전망이다. 국가적 과제인 기후환경 변화 대응에 동참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또 각 지역 농가의 특산물을 소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채식 식단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검증된 바 있다. 2016년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영국 옥스포드대의 연구에 따르면, 식단에서 고기와 유제품을 제외하면 음식에서 나오는 개인의 탄소발자국을 2/3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식재료별 온실가스 배출순위는 소고기〉 치즈〉 돼지고기〉 닭·오리〉 계란〉 우유〉 쌀〉 콩류〉 당근〉 감자 순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서울시는 2014년부터 매주 금요일 점심마다 구내식당에서 채식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청 전 직원 1800여 명에게 1년 동안 각자 52끼가 채식으로 제공된다. 2013년부터 월 1회 채식의 날을 운영해온 창원시도 채식식단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에 주목해 지난해 12월부터 채식의 날을 월 2회로 늘렸다. 그 밖에도 경남 김해시, 진주시, 거제시, 통영시, 고성군, 충북 청주시 등 여러 지자체에서 한 달에 1~2회 ’채식의 날‘을 정해 채식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채식 트렌드는 대학가 식당 풍경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서울대는 비건을 위한 채식 뷔페 ‘감골식당’을, 동국대는 채식 뷔페 ‘채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승려인 교수를 비롯해 한식을 선호하는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일반 메뉴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채식 선택권이 주어져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다. 경북대학교는 지난 4월부터 일반 학식과 비슷한 가격으로 채식 학식을 제공한다. 이전에도 샐러드 뷔페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매 끼니 콩고기 스테이크, 비건 라면, 비건 비빔밥 등 비건 학식이 제공되는 건 처음이다. 경북대 관계자는 “채식 메뉴 이용자가 하루 10명 내외로 많지는 않지만 소수 학생의 기호를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대학가의 이런 변화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의 식습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한다는 측면도 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식생활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27.4%가 간헐적 채식, 9.0%가 지속적인 채식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리 이제는 육식과 채식 중 어느 하나만을 정답으로 선택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이영은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플렉시테리언 식사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듣던 ‘골고루 먹어라’의 정석이나 다름없다”며 “균형식은 식물성·동물성 단백질의 비율이 7:3, 또는 8:2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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