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당 드물고 샐러드에 맨밥 맛없어 고생…‘채밍아웃’의 고통 실감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0 00:20

업데이트 2021.07.1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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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08면

[SPECIAL REPORT]
‘플렉시테리언’이 뜬다

일주일 동안 채식(비건)을 체험하고 있는 오유진 기자가 샐러드와 과일 주스를 먹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일주일 동안 채식(비건)을 체험하고 있는 오유진 기자가 샐러드와 과일 주스를 먹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직접 해보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1주일 채식 체험해보니
2배 비싼 비건 롤, 입맛은 별로
육식 맛 재현 ‘제로비건’은 꿀맛

기후변화 걱정 땐 무작정 채식보다
‘채소 최소 한 끼’부터 실천해야

일주일간의 채식 도전은 선배의 권유에서 시작됐다. 한국 사회에서 채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취재하던 중, 채식인을 인터뷰하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는 게 더 와 닿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일주일 정도면 고기 없이도 버틸 만하지 않을까. 이왕 하는 거 페스코, 락토-오보 보다는 비건이 확실한 차이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6월 28일 월요일 5시. 채소가 싫어 비빔밥도 안 먹는 내가 일주일간 채식에 도전했다.

첫날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가격이었다. 비채식 메뉴보다 고가인 경우가 십중팔구였다. 첫날 저녁은 한 백화점에서 채식 트렌드에 맞춰 출시한 비건 롤이었다. 가격은 4조각에 6500원. 바로 옆에 놓인 캘리포니아롤이 8조각에 7000원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 비싸다. 가지, 파프리카 등 알찬 재료가 들어갔지만, 비싼 가격에 비해 맛은 별로였다. 음식을 함께 맛본 지인은 “이걸 먹으라고 파는 거야?”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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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저녁으로 먹은 타코 음식점에서는 “육식 재료를 모두 빼 달라”고 요청했다. 일반 타코보다 양이 적어지니 2인분 상당의 고가 메뉴를 먹어도 배가 안 찼다. ‘돈 없으면 비건도 못한다’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외국에는 베지테리언 옵션을 주문하면 할인 혜택을 주거나 음식량을 늘려주는 경우도 있다지만 한국에는 그런 곳들이 많지 않다.

식당을 찾는 일에도 애를 먹었다. 회사 근처에서 채식이 가능한 음식점은 샐러드 전문점(사진)이 유일했다. 어느 음식점을 가든 맨밥만 먹거나, 음식점에 부탁해 재료를 빼야 했다. 회사 동료나 취재원과 함께 먹는 점심은 조금 과장하면 고문당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메뉴 선택권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육식에 동참해야 했다. 눈앞에 놓인 제육볶음을 보며 밑반찬과 맨밥만 열심히 삼켰다. 차마 ‘채식 중이라 못 먹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채식인들이 왜 그토록 ‘채밍아웃(채식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을 어려워하는지 몸소 깨달았다.

채식 셋째 날 외부 취재를 마치고 찾아간 음식점에서 버섯 야채죽을 먹을 때였다. 밑반찬으로 나온 오징어 젓갈, 장조림, 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 반찬들은 그대로 버려질 운명이다. 다음날 먹은 샐러드도 계란, 닭가슴살은 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먹는 음식보다 버려지는 음식이 많아지니 이런 채식도 과연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

채식 4일 차. ‘역시 한국 사회에서 채식은 아직 어렵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았다. 이날은 지인의 추천을 받아 ‘제로비건’에 방문했다. 제로비건은 감자탕, 강정, 곰탕 등 기존의 육식 맛을 그대로 재현한 채식당이다. 채수해장국을 주문하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음식을 기다렸다. 과연 맛있을까. 음식이 나오자마자 뜨끈한 쌀밥에 시래기를 올려 국물과 함께 삼켰다. 이 맛이다. 내가 찾던 ‘진짜 음식’의 맛. 같이 식사를 하던 부모님도 “이게 채식이라는 게 말이 되냐”며 여러 차례 반문했다. 이런 맛이라면 열흘도, 한 달도 채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샐러드만 먹을 게 아니라 이런 음식으로 채식해야 하는구나. 이런 곳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채식? 그거 풀만 먹는 거잖아”라며 거부감이 생길 법했다.

일주일을 보낸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작정 환경을 위해 채식하며 버틴다는 게 무슨 장점이 있을까였다. 오히려 실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황에 맞게 식습관을 조절해야 건강도, 환경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기후변화가 걱정돼 채식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채소, 최소 한 끼’부터 권하고 싶다. 본인의 식습관을 무시한 채 버티지 말고, 상황에 맞춰 행복한 식생활을 해보자는 얘기다. 집 근처 채식당을 찾아 방문해보기, 덩어리로 된 고기 줄이기만 실천해도 플렉시테리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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