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지고 살도 안 쪄 좋아요” 싹 비워 “맛없어 채식 잦으면 전학갈 것” 불만도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0 00:20

업데이트 2021.07.1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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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09면

[SPECIAL REPORT]
‘플렉시테리언’이 뜬다

지난달 1일 서울 노원구 화랑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채식 급식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환경 교육을 위해 월 2회 채식 급식을 진행한다. 정준희 인턴기자

지난달 1일 서울 노원구 화랑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채식 급식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환경 교육을 위해 월 2회 채식 급식을 진행한다. 정준희 인턴기자

“고기를 먹으면 키만 크는데, 채소까지 먹으면 키도 크고, 건강해지고, 살도 안 찐대요. 그런데 맛은 없어요.”

월 2회 채식 급식 초등학교 가보니
교장 “육식 나쁜 것처럼 오해 말길”
영양사 “격주 1회 영양상 문제 없다”

간헐적 채식 급식 아직 찬반 갈려
다양한 메뉴, 인력 확충 등 따라야

지난달 1일 서울 화랑초 김서희(가명·6학년) 학생이 월 2회 제공되는 채식급식을 먹으며 남긴 소감이다. 칸막이로 가려진 옆자리에서 함께 급식을 먹던 박현중(가명·6학년) 학생은 “고기를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도 안 좋거든요”라며 그릇을 싹 비웠다.

“채식 급식에서 좋은 점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마치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것처럼, 고기를 먹으면 나쁜 사람인 것처럼 오해하면 안 됩니다. 특히 성장기인 학생 여러분들은 당연히 필요하면 고기도 먹고, 여러 가지 영양소를 다양하게 섭취해야 합니다”

급식 전 우명원 화랑초 교장이 교내 방송을 통해 전달한 당부의 말이다.

이 학교는 지난 4월부터 학생, 교직원 약 700명을 대상으로 월 2회 채식 급식을 시작했다. 이날 화랑초등학교의 점심 식단은 찰보리밥, 맑은콩나물국, 비건콩불고기, 두부조림, 포기김치, 수박이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채식 급식은 우유, 계란이 포함된 ‘락토-오보’ 식단이 대부분이지만, 화랑초는 ‘비건(완전 채식)’에 가까운 채식급식을 제공했다.

생소한 채식 급식에 불만을 내비친 학생도 더러 있었다. 화랑초 박민준(가명) 학생은 “지금보다 더 자주 채식을 하면 전학을 가고 싶다. 채식은 맛있는 게 없는 것 같다”며 “플라스틱 안 쓰기 같은 운동을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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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내 초·중·고교는 지난 4월부터 ‘그린급식의 날(채식의 날)’ 이라는 이름으로 월 2회 채식 급식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특별시 채식환경 조성 지원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자 학교 급식을 결정하는 교육청이 채식 활성화에 나선 것이다. 이중 서울 화랑초, 서울 온곡초 등 초·중·고 7개교는 생태전환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돼 채식과 더불어 탄소 중립, 생태계 교육도 하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온곡초는 채식 급식과 저탄소, 기후변화 교육을 함께 진행한다. 지난 5월 진행한 교내 모내기 체험도 이런 교육의 일환이었다. 급식을 담당하는 김선아 온곡초 영양사는 “채식을 기준으로 하면 칼로리가 적게 나오긴 한다. 그러나 튀김류 등 ‘맛있는’ 채식 위주로 식단을 짜고 있어 평소와 잔반량이 다르지 않다”며 “주 1회, 격주 1회로 진행하는 것은 영양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생태전환학교 연구를 담당하는 임항섭 온곡초 연구부장은 “급식 외에도 채식 레시피 만들기, 환경 토론 등의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라며 “아이들과 지속해서 환경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라고 했다.

온곡초 생태동아리 회장인 6학년 양서윤 학생은 “채식은 저탄소 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채식도 많이 먹으면 든든해서 ‘고기 안 먹으면 배가 고프다’ 같은 편견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배민정 온곡초 교감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학생들이 정크 푸드를 많이 섭취하게 돼 체력도 떨어지고, 비만율은 높아졌다”며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육식을 많이 하는 식습관을 고치는 데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교육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자 각 시도 교육청도 채식급식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부터 초등학교 3곳을 시작으로 월 1회 채식의 날을 지정해 관내 초·중·고등학교에 채식 급식을 운영하고 있다. 2011년 전국 최초로 채식 급식을 도입한 광주교육청은 채식 급식 선택제 시범운영을 위해 1억5000만원 상당의 예산을 투입했다. 경남교육청은 오는 9월부터 월 1회 이상 채식 급식의 날 ‘다채롭데이’를 운영할 계획이다. 울산교육청은 매주 ‘고기없는 월요일’과 월 1회 ‘채식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울산에서는 모든 초·중·고교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채식의 날에 육류뿐 아니라 해산물·달걀·유제품도 나오지 않는다.

학교에서 채식 급식을 하는 문제는 그동안 논란거리였다. 지난해 4월 채식주의자인 초·중·고교 학생과 학부모들이 “급식을 할 때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은 “학교급식법상 식단 작성 시 고려해야 할 사항에 채식을 하는 학생을 위한 내용이 없어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달 4일에는 초·중·고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채식급식시민연대가 동물성 식품이 포함되지 않은 채식 식단을 모든 학교에서 보장해 줄 것을 인권위에 제기하기도 했다.

급식 선택권 보장을 반기는 여론도 적지 않지만 채식 급식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 측은 “성장기 청소년에게 영양학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채식 급식을 하게 되면 육식이 나쁜 행위인 것처럼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학부모 김모씨는 “환경 위기가 심각하다는 건 급식 이외의 교육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채식할 선택권을 주듯 채식하지 않을 선택권도 충분히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헐적 채식 급식이 학교 현장에서 더 높은 지지를 얻으려면 보완해야 할 문제도 있다. 학생들에게 좀 더 친숙한 맛으로 다가가기 위한 채식 식단 개발이 필요하다. 또 동물성 식품이 첨가되지 않은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조리시간도 확보돼야 한다.

울산 지역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한 영양사는 “채식 급식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조리 인력 부족 문제는 현장의 학교 영양사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며 “건강과 환경을 위한 채식 급식의 좋은 취지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단순 캠페인성 접근보다는 다양한 메뉴개발, 인력 등 현실적 문제를 교육 당국이 좀 더 세심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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